[이현덕이 만난 생각의 리더]<20> 박형준 국회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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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국회사무총장이 30여년 다양한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국가발전 모델인 공진국가 구상을 내놨다. 이 구상은 기존 정치질서를 깨는 새로운 정치 지형도다. 사진=윤성혁기자 shyoon@etnews.com

박형준 국회사무총장은 현실 정치를 경험한 사회학자다. 그가 새로운 국가 발전모델인 ‘공진(共進)국가’ 구상을 내놨다. 이 구상은 기존 정치질서를 깨는 새 정치 지형도다.

그는 승자독식의 정치무상(無常)을 체험한 바 있다. 이명박정부에서 잘나가던 그는 19대 새누리당 공천에 탈락해 무소속 출마를 강행했지만 낙선했다. 그 후 대학교수로 일하면서 30여년의 다양한 경험을 토대로 공진국가 구상을 집필했다.

지난해 12월 ‘한국사회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저서를 펴냈다. 부제로 ‘박형준의 공진국가 구상’을 달았다. 이 책에는 그의 삶이 녹아 있다. 그는 국회 의정활동과 청와대 국정과제 추진경험을 학문적 토대로 해 공진국가 비전과 전략을 소상히 제시했다.

박 총장을 국회 본관 314호 사무총장실에서 만났다. 그는 교수 출신답게 공진국가 비전과 전략을 논리정연하게 설명했다. 인터뷰는 한 시간여 진행했다.

-공진국가 모델을 제시했는데 공진국가란 어떤 것인가.

▲공진은 함께 나아간다는 의미다. 생태적 균형과 동태적 진화를 함축한 개념이다. 이제는 함께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고 공감하며 수평적 협력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큐브게임에서 정육면체의 색깔을 맞추려면 육면을 진화시켜야 한다. 바로 공진국가 모델이다.

-쉽게 실현할 수 있나.

▲쉬운 일이 아니다. 공진국가를 실현하려면 개헌을 하고 선거구제를 개편해야 한다. 의원 200명이 개헌에 찬성해야 한다. 정치인들은 공진국가 취지에 찬성한다. 하지만 총선에서 살아남아야 하므로 기득권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차기 대선주자가 대선공약으로 공진국가를 제시하고 국민 지지를 받으면 실현할 수 있다. 차기가 안 되면 차차기에 실행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각 당 대표가 국회에서 한 연설 내용을 보면 맥을 같이한다고 본다.

-집필 구상은 언제부터 했나.

▲30여년 다양한 경험을 했다. 국정과 관련한 활동을 하면서 항상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일하면서 대통령제와 정치구조의 근원적 문제를 체감했다. 정치 틀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정리하는 데 2년 반 걸렸다. 지금이 구조적인 전환기라고 판단했다. 지난 연말 책을 펴냈는데 관심이 많아 외부 특강도 자주 나간다(그는 기관장으로 적절하지 않아 출판기념회도 열지 않았다고 했다).

-왜 지금이 구조적인 전환기라고 보나.

▲그동안 계몽적 리더십에 의한 기존 발전국가 모델은 대통령이나 정부가 국민을 끌고 나가는 형태였다. 나를 따르라는 식이다. 1980년대는 반도체와 전자, 1990년대는 정보통신기술(ICT)과 같은 신성장동력이 경제를 선도했다. 지금은 그런 게 보이지 않는다. 기업이 엄청난 돈을 쌓아두는 이유다. 돈 벌 곳이 있으면 대기업이 왜 투자하지 않겠나. 이제 양적 성장 발전모델은 한계에 직면했다. 잠재성장률은 3%대다. 지금은 정치 위기다. 국회의원 신뢰도는 5% 남짓이다. 지금 정치는 승자독식이다. 여야 대립 정치로 정치 양극화다. 국회는 날마다 싸움판이다. 국가미래를 위한 논쟁도 아니다. 그동안 우리는 초고속성장에 초점을 두고 100m 달리듯 했다. 이제는 마라톤하는 식으로 정치를 해야 한다. 마라톤은 선수들이 30㎞까지는 같이 뛴다. 정치도 같이 가면서 견제하고 긍정적인 자극을 줘서 발전하는 형태로 해야 한다. 강력한 정치나 경제적 리더십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정쟁 정치를 그만두고 정책 정치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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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윤성혁기자 shyoon@etnews.com

-개인으로 내각제를 선호하나.

▲장기적으로 내각제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제로 성공한 미국도 민주주의 위기라는 논의가 많다. 대통령제는 정치 양극화를 가져온다. 초당적 협력에 기초해 세계 중심국가로 발전하는 데 적합지 않다. 안정 사회는 대부분 북유럽과 같은 의원내각제를 채택한다. 승자독식이 아닌 연합 정치가 바람직하다.

-5년 단임제 문제는.

▲가장 큰 문제는 정책 승계를 안 한다는 점이다. 국정에 단절은 없다. 그런데도 새 정부가 들어서면 전임 정부와 정책 차별화를 한다. 국정 연속성은 8% 수준이다. 새 정부의 청와대 팀은 아마추어가 다수다. 이명박정부 500여명 비서실 인원 가운데 부처 파견 공무원을 제외하면 선거캠프 출신이다. 국정 경험이 있는 기존 사람은 다 내보낸다. 새 비서진은 대통령에 대한 충성도는 높지만 전임 정부가 추진하던 정책은 승계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이명박정부 정책 가운데 녹색성장이나 마이스터고 육성은 그 취지가 좋은 데도 정권이 바뀌자 관심도가 뚝 떨어졌다.

-국회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은 언제 설립하나.

▲국회에 법안을 제출해 지난 3월 공청회를 열었다. 6월 국회운영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회에서 법안을 통과시키면 설립한다. 여야 간에 설립 취지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설립 이유는.

▲국회는 한국 정치논의의 중심이다. 5년, 10년 후 미래가 중요하다. 그동안 국회는 연구기능과 전략기능이 취약했다. 5년 단임제지만 중장기 관점에서 국가미래가 걸린 중요한 이슈를 연구해야 한다. 공무원연금개혁은 국회 연구기능이 취약해 정부안을 그대로 심의할 수밖에 없다. 국회의 다양한 의견을 조율해 여야에 도움을 주면 정책 타협이 쉽고 인기영합주의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연구원은 여야가 추천한 이사들로 이사회를 구성해 운영한다. 인원은 최소화한다. 외부 전문 인력이 참여하는 프로젝트 베이스로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김영삼정부 시절 정보화 계획에도 참여했는데.

▲교수시절 이각범 전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이 만든 세계화 정보화 비전 작업에 참여했다. 당시는 정보화가 시대 추세였다.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으로 활동했다.

-이명박정부에서 정보통신부를 해체했다. 왜 그랬나.

▲당시 인수위는 작은 정부 구현이 목표였다. 관련부처를 15개 이하로 줄인다는 방침이었다. 나름 의미는 있지만 다 잘했다는 건 아니다. 1990년대는 정보통신부라는 독립부처가 필요했고 ICT 강국을 만들었다. 당시 인수위에서 독립부처 유지가 타당한지의 문제 제기가 있었다. 나는 기획조정위 인수위원으로 최종 논의과정에 참여했다. 정부조직개편은 박재완 정부혁신규제개혁태스크포스(TF)팀장 소관이었다. 정보통신부가 담당하던 산업은 산업자원부로, 통신은 방송통신위원회로 연구개발은 과학기술부로 넘기는 것으로 결론났다. 지금 생각해 보면 꼭 그렇게 했어야 하느냐는 생각이 든다.

-재벌 개혁은.

▲최근 재미난 이야기를 들었다. 미국 금융위기 이후 월가에서 시위가 한창인데 재벌들이 사재를 사회에 통 크게 환원하면서 시위 동력이 확 떨어졌다고 했다. 재벌이나 대기업이 사회적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재벌 소유구조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지원해 주는 방식으로 동반성장을 강화해야 한다. 사회적 합의로 재벌문제를 포용적 성장틀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

-연구개발(R&D)은.

▲정부 R&D는 기업이 할 수 없는 기초과학 같은 분야에 투자해야 한다. 우리는 돈을 나눠 주는 방식에 익숙하다. R&D시스템 전반을 조정해야 한다. 현장 점검은 꼭 해야 한다.

-청와대 참모론은.

▲참 어려운 일이다. 청와대가 수평적 의사시스템이 아닌 수직적이면 국정에 오류나 실수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청와대 참모는 토론할 때 내부 이견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 이견이 없는 게 좋은 건 아니다.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이나 정무수석, 경제수석 같은 이는 정무적 판단력을 갖춰야 한다. 국정의 큰 그림을 그리고 전략적 사고를 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참모들과 소통했나.

▲이 대통령은 적어도 소통은 원활했다. 이 대통령은 참모들과 토론하기를 좋아했다. 관련 부처 실·국장급, 과장급도 주요 정책 논의에 불러 이야기를 들었다. 내부 언로는 개방적이었다. 참모 간에 이견도 많았다. 대통령 앞에서 수석끼리 얼굴을 붉히며 격론을 벌이기도 했다.

-다음 총선에 출마하나.

▲임기 2년 동안 현직에 충실할 뿐이다. 어떻게 할지 정해진 게 없다.

-좌우명과 취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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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윤성혁기자 shyoon@etnews.com

▲외유내강이다. 테니스와 농구를 좋아한다.

(그는 키가 181㎝다. 지난해 11월 열린 32회 중앙행정기관 테니스 동호인대회 최우수선수상을 받았다. 농구는 20대 청년과 경기해도 점프에서 전혀 밀리지 않는다고 배석했던 하경찬 비서실장이 귀띔했다.)

박 총장은 고려대 사회학 박사로 중앙일보 기자와 동아대 교수, 부산경실련 기획위원장, 국회의원, 청와대 수석비서관, 다시 동아대 교수로 복귀했다. 언론계와 학계, 정치계를 두루 경험했다. 그는 젊은 시절 운동권 논객으로 폭넓게 활동했고 진보와 보수를 넘나들었다. 17대 국회에 입성해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캠프에서 맹활약했다. 이명박정부 대통령직인수위 기획조정위 인수위원으로 100대 주요 국정과제 선정과 구체적인 실천계획을 만든 전략이론가다. 청와대 홍보기획관과 정무수석, 사회특별보좌관을 역임했고, 19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동아대 국제전문대학원 교수로 일하다가 지난해 9월 국회사무총장에 임명됐다.


이현덕대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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