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메이저리그에서 전통의 라이벌 LA 다저스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경기가 열렸다. 양팀 선발투수도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좌완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와 매디슨 범가너여서 관심이 집중됐다. 경기는 자이언츠 4대 0 완승으로 끝났다. 커쇼는 상대 투수인 범가너에게 솔로홈런을 허용했는데 이는 커쇼가 2008년 데뷔 후 투수에게 맞은 첫 홈런이다.
경기 후 MLB.com은 흥미로운 기사를 게재했다. 커쇼가 범가너에게 홈런을 허용한 공을 분석한 결과 흔히 말하는 ‘실투’였다는 것이다. MLB.com은 올해 도입한 분석 시스템 ‘스탯캐스트’를 활용해 커쇼의 패스트볼 속도와 릴리스 포인트, 타자가 느끼는 구속이 평소 패스트볼에 못 미쳤다고 분석했다. 패스트볼 코스도 한가운데로 몰렸다고 지적했다.
◇스포츠와 과학 접목 확대
경기 판정을 돕기 위한 판독기술부터 경기력 향상을 위한 소재개발, 경기 내용과 선수 분석을 위한 분석 기술 등 다양한 스포츠 분야에 과학기술 적용이 늘어나는 추세다. 축구 골라인 판독기, 테니스 인·아웃 판별, 오심을 줄이기 위한 비디오판독 등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최근 메이저리그가 스탯캐스트라는 신기술을 도입해 경기분석력 향상은 물론이고 시청자에게 시청 재미까지 더해주고 있다. 스탯캐스트는 그라운드 위에 있는 선수 움직임을 분석하고, 공이 움직이는 모든 궤적과 속도를 측정하는 기술이다.
스탯캐스트는 트랙맨 ‘레이더 추적기술’과 카이런헤고 ‘광학 카메라 기술’이 결합한 기술이다. 경기장에 있는 모든 선수 움직임을 추적해 데이터화하고 공의 움직임도 모두 추적한다. 투구 속도와 투수 릴리스포인트, 공의 회전, 각도 등을 상세하게 분석하고, 타격시엔 타구 속도와 각도, 비거리 등을 측정한다. 메이저리그는 지난 시즌 3개 구장에 스탯캐스트 시스템을 처음 적용했고 올해는 30개 전 구장으로 확대했다.
경기 데이터를 상세히 분석하는 것이 어떤 도움이 될까. 구단 입장에서는 선수 분석에 활용할 수 있고 야구팬은 경기를 새로운 측면에서 즐길 수 있다. 실제로 스탯캐스트를 활용한 선수 스카우트로 성공한 경우도 있다. 현재 아메리칸리그 승률 1위인 돌풍의 팀 휴스턴 애스트로스에서 2선발로 활약하는 콜린 맥휴는 2013년까지만 해도 평균 이하 투수로 평가됐다. 뉴욕 메츠와 콜로라도를 거치며 기록한 8패가 메이저리그 경력 전부였다. 하지만 휴스턴은 스탯캐스트에 나타난 맥휴의 커브볼 회전수를 눈여겨봤다. 휴스턴은 2013 시즌 후 웨이버로 방출된 맥휴를 영입했고 2014시즌에 커브볼 비중을 높인 투구로 11승 9패, 방어율 2.73의 놀라운 성적을 거뒀다. 맥휴는 올해도 현재까지 6승 2패로 좋은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 프로야구도 과학 접목 스타트
우리나라 프로야구도 투구 및 타구 궤적 추적시스템을 적용한다.
애슬릿미디어(대표 이용한)는 지난달 잠실야구장과 목동야구장에 미국 트랙맨 베이스볼의 ‘트랙맨 베이스볼 스타디움’을 설치했다. 트랙맨 베이스볼 스타디움을 활용한 야구 중계는 KBSN스포츠를 통해 서비스한다.
트랙맨은 덴마크에 본사를 둔 회사로, 메이저리그 스탯캐스트가 사용하는 기술을 제공하는 회사다. 지난 2008년 처음 선보인 트랙맨 베이스볼은 미사일을 추적하는 군사용 레이더에 사용하던 기술을 바탕으로 개발됐다.
투수가 공을 놓는 릴리스 포인트부터 타자가 타격한 공이 첫 번째 바운드를 하는 시점까지 야구공의 모든 궤적을 추적해 데이터화한다. 트랙맨이 제공하는 데이터는 초속과 종속, 공 변화 정도, 릴리스 포인트 높이, 투수판 기준 릴리스 포인트 거리, 투구 회전축과 회전량, 홈플레이트에서 제구 위치, 타격시 타구 스피드, 방향, 비거리 등 총 27가지에 이른다.
스탯캐스트는 메이저리그 팬들에게 투구 구속과 릴리스 포인트 위치를 고려한 ‘효과속도’라는 개념을 제공하는데 팬들은 이러한 서비스를 통해 같은 구속이라도 어떤 투수 공이 타자에게 더 빠르게 체감되는지를 정확히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느낌으로 말하는 ‘묵직한 직구’ ‘변화구 각도가 좋다’는 표현 대신 ‘종속이 몇㎞’ ‘변화구 각도와 공 회전량이 어느 정도다’ 등으로 구체적으로 비교할 수 있다.
감독과 코칭스태프는 트랙맨 데이터를 활용해 선수 상태를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슬럼프에 빠진 투수 투구를 전성기와 비교하면 릴리스 포인트가 흔들리는지, 공 회전이 문제인지 등을 알아낼 수 있다.
이 같은 분석효과 때문에 메이저리그 30개 구장은 트랙맨 베이스볼 스타디움을 모두 설치했고 마이너리그 구장에도 대부분 설치했다.
사실 공 궤도를 추적하는 트랙맨 기술은 약 10여년 전에 골프용으로 먼저 개발됐다. 이제는 국내에도 익숙한 트랙맨 골프는 샷 궤적 측정기기로 높은 수준 정확도와 신뢰성을 인정받고 있다. 현재는 골프장비 연구개발(R&D)용, 피팅용, 레슨용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된다. 미국 PGA 투어 공식 장비로 사용될 정도다.
레이저 추적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만큼 분석기술만 갖춰지면 골프와 야구 외에 다른 구기 종목으로 적용 범위를 확대할 수 있다.
이용한 애슬릿미디어 대표는 “야구의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는 트랙맨 베이스볼을 국내에 선보이게 돼 영광”이라며 “트랙맨 시스템을 올해 하반기까지 전 경기장에 설치해 내년부터는 야구팬들이 보다 흥미롭게 야구를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