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보는 과학뉴스]거미줄 본뜬 인공 생체섬유 개발

영화 ‘스파이더맨’의 주인공은 손목에서 나오는 거미줄에 매달려 건물 사이를 자유자재로 날아다닌다. 주인공이 발사한 거미줄은 아주 가늘지만, 사람이 매달려도 끊어지지 않을 만큼 튼튼하고 유연하다. 사람이 거미에 물려 거미줄을 쏘는 능력이 생긴다는 것은 영화적 상상력이지만, 유연하면서도 튼튼한 거미줄은 사실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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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거미줄은 강철에 버금가는 강도, 방탄복 소재로 사용하는 케블러(Kevlar)에 버금가는 인성(섬유가 끊어질 때까지 흡수하는 에너지)을 가질 정도로 기계적 성질이 뛰어나다. 생체 적합성도 뛰어나 상처봉합이나 인공장기 등 다양한 바이오메디컬 분야에 응용할 수 있다.

하지만 거미는 누에처럼 고치를 만들지도 않고, 자기영역을 침범하면 싸운다. 때문에 사육을 통한 거미줄 생산 방법은 경제성이 없다. 대안으로 유전자 조작을 통한 인공거미줄 제작이 많이 시도돼 왔다.

그러나 실 샘에 있는 거미줄 단백질 용액이 실 관을 따라 이동하고, 자가 조립을 통해 거미줄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실험을 통해 밝히기 어려웠다. 또 원자레벨의 시뮬레이션은 다수 거미줄의 상호작용을 모사하기엔 효율적이지 않아 인공거미줄 설계와 구현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런 가운데 최근 국내 연구진이 포함된 국제 공동연구팀이 거미줄을 모사한 인공 생체섬유를 개발했다. KAIST 기계공학과 유승화 교수팀은 미국 매사추세스 공대, 플로리다 주립대, 터프츠 대학과의 공동연구에서 컴퓨터 모델링을 이용해 인공 생체섬유 개발에 성공했다.

연구팀은 다수 거미줄의 상호작용을 모사하는 컴퓨터 모델을 개발하고, 거미줄 조립에 영향을 미치는 인자들을 밝혀냈다. 박테리아에 유전자 조작을 통해 실제와 유사한 재조합 거미줄 단백질을 합성하고, 거미실관과 유사한 유체흐름을 모사한 공정으로 인공거미줄을 제작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해 거미줄 단백질이 녹아있는 용액이 미세한 관을 통해 배출되는 방적과정을 거치고, 이 과정에서 분자들이 한쪽방향으로 정렬되며 높은 강도의 섬유를 만드는 것을 알아냈다. 거미줄 단백질 분자는 물속에서 안정성을 갖는 친수성과 반대로 물과 쉽게 결합되지 않는 소수성을 가진 영역이 교차로 존재하는 고분자라는 사실도 알아냈다. 소수성 영역 비율이 낮으면 강성이 약해지고, 높아지면 거미줄이 생성되지 않고 뭉치기만 한다는 사실도 밝혀 적절한 비율의 단백질 합성이 중요함을 알아냈다.

박테리아 유전자 조작을 통한 단백질 합성 과정은 수개월이 걸리는 만큼 시뮬레이션을 통한 다양한 친수성-소수성 영역 비율과 길이를 가진 단백질의 선제적 탐색이 매우 중요했다.

연구팀은 모델링을 통해 제시된 단백질을 박테리아 유전자 조작을 통해 합성하고, 실 관을 모사한 방적과정으로 인공 거미줄을 제작했다. 생산한 인공거미줄 강도와 탄성은 자연 거미줄에 비해 미흡하지만, 거미줄 자가 조립과정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에 의의가 있다. 연구팀은 거미줄 생성 원리가 밝혀져서 향후 실제 거미줄 강도에 버금가는 생체섬유 제작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유승화 교수는 “체계적 설계를 통한 인공 생체섬유 제작이 가능함을 증명했다”며 “향후 인공 생체섬유 합성의 새 가능성을 열었다”고 말했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