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스마트 헬스케어, 규제의 덫에 갇혀 후진국으로 전락

#아시아에 위치한 한 국가가 초대형 원격의료 사업을 발주했다. 대형병원인 A병원은 의료봉사 활동을 진행하면서 관계를 돈독히 했다. 원격으로 협진을 진행, 현지에 맞는 원격의료 서비스 구현도 가능하다. 하지만 실제 사업 수주는 다른 나라 병원의 몫이 됐다. 관계를 돈독히 한 우리나라 병원 의사들이 원격의료 수출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대형병원인 B병원은 원격의료 사업 수주를 위해 적극 나섰지만 국내 수행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제안조차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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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병원과 정보기술(IT)기업이 수십조원 규모 스마트 헬스케어 시장 선점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 미국·유럽·일본 등은 병원과 IT기업이 연계해 상상조차 못했던 첨단 스마트 헬스케어 서비스를 앞다퉈 내놓는다. 시장이 태동하는 지금, 시장을 선점하는지 못하는지는 향후 스마트 헬스케어 주도국가가 될지, 종속국가가 될지를 좌우한다. 세계적 수준의 의료 서비스와 정보통신기술(ICT)을 보유한 우리나라는 애석하게도 규제의 덫에 갇혀 스마트 헬스케어 종속국가로 전락했다.

◇가장 큰 규제의 덫은 원격의료 불허

가장 대표적 규제의 덫은 원격의료 불허다.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 상정됐지만 의사 반대로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의사 단체인 의사협회 반발로 원격의료는 여전히 실행되지 못한다.

대형 병원과 IT기업이 10년간 당뇨·부정맥 등 만성질환자 대상 원격의료 서비스를 개발했지만 활용도 못한 채 사장됐다. 대부분 병원 u헬스케어센터는 정부 과제를 수주, 수행하는 정도다. 연구 결과를 상용화하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한 대형 병원 u헬스케어센터는 10년간 다양한 원격진료 연구를 진행했다. 여러 성과도 얻었지만 상용화한 모델은 단 하나도 없다. 상용화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이다. 병원 u헬스케어센터장은 “10년간 모바일 기반 원격의료 서비스 등 다양한 모델을 개발했다”며 “그러나 모두 사용이 불법이어서 상용화를 못했다”고 말했다.

원격진료 자체가 불법인 상황이다 보니 적절한 보험수가 체계도 없다. 원격의료 등 스마트 헬스케어 서비스 개발 비용을 병원이나 업체가 부담할 수밖에 없다. 스마트 헬스케어 서비스 개발에 투자할 수 있는 병원은 극소수다.

◇투자 금지·복잡한 허가절차도 문제

병원 대상 투자가 금지된 규제도 스마트 헬스케어 후진국으로 전락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원격의료 등 스마트 헬스케어 서비스는 장기간 많은 투자를 요한다. 상용화 단계에서 여러 차례 복잡한 임상실험도 거쳐야 한다.

현 의료법에는 병원 투자 유치를 불허한다. 국내에서는 의료 영리법인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병원은 외부 투자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규모 투자를 하기 쉽지 않다. 대형 병원장은 “보험 체계가 환자에게 유리한 상황에서 투자도 받지 못하면 연구개발(R&D) 등 중장기 투자는 불가능하다”며 “외부 투자를 허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부 투자허용에 따른 문제는 추가 제도를 마련, 보완하면 된다는 주장이다.

정부의 의료기기 허가 절차도 문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의료기기 허가 절차는 스마트 헬스케어 서비스에 적용하기는 너무 복잡하고 오래 걸린다. 스마트 헬스케어는 급변하는 기술 환경에 맞춰 적시 서비스를 출시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허가 절차는 통상 1~2년 이상 소요된다.

허가 절차를 거쳐 서비스를 출시하면 이미 그보다 기능이 고도화된 새로운 서비스가 시장에 나온다. 우리나라 스마트 헬스케어는 늘 뒷북만 치는 구조다. 대형 병원장은 “스마트 헬스케어 서비스를 개발, 의료기기로 허가를 신청하면 통상 1년 반 이상 걸린다”며 “이러한 구조에서는 절대 해외 기업과 경쟁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의사들 집단 이기주의도 스마트 헬스케어 강국을 만드는 데 걸림돌이다. 원격의료 허용을 골자로 한 의료법 개정안은 의사협회의 집단적 반발로 이뤄지지 않는다. 개원의 중심인 의사협회는 원격의료가 허용되면 의료서비스 질적 하락과 다양한 위험요인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실상은 대부분 환자가 동네 병·의원을 찾지 않고 종합병원 원격진료 서비스를 이용하게 될 것을 우려해서다. 환자를 뺏길 것이라는 걱정 때문인 것이다.

대부분 대형병원 관계자는 원격의료 서비스가 시행되면 오히려 동네 병·의원 환자 수가 늘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만성질환자는 종합병원보다는 동네 병원에서 원격협진으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 등을 만들 수 있다.

대형병원 원로 의사는 “과거 의약분업 시절 약사가 결사반대했지만, 지금은 정착돼 오히려 약사에게 득이 된다”며 “원격의료 서비스 논의도 초기부터 제도를 마련하는 데 의사가 적극 참여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조언했다.

◇밥그릇 싸움에 후진국으로 전락

원격의료를 놓고 밥그릇 싸우기를 하는 동안 주변 선진국은 스마트 헬스케어 시장 선점을 위해 두 팔을 걷었다. 스마트폰 기반 실시간 당뇨나 부정맥 진단 서비스는 미국에서 상용화됐다.

이 서비스는 국내 이용자도 상당수 존재한다. 환자가 신체 데이터를 입력하고 80달러를 지불하면, 실시간으로 전문의가 해당 데이터를 분석, 진단과 처방을 한다. 국내서는 서비스를 개발하고도 상용화를 못해 국민이 해외 서비스를 이용하는 실정이다.

원격의료 등 스마트 헬스케어 서비스가 규제 대상이어서 삼성전자 등 국내 대기업은 단말기 등 하드웨어만 초점을 맞춘다. 대형병원 u헬스케어센터장은 “디바이스는 서비스 목적에 맞게 언제든지 적용하면 그만”이라며 “경쟁력을 좌우하는 것은 결국 서비스인데 대기업도 서비스 개발은 외면한다”고 말했다.

수출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중남미 순방과 함께 가천대길병원이 페루에 원격의료를 수출한다는 낭보가 전해졌지만 단발에 그친다. 해외에서 원격의료 서비스 구축 및 운영 사업이 잇따라 발주되지만 우리나라 병원과 기업은 제안조차 못한다. 페루에 원격의료 서비스를 수출한 가천대길병원 역시 수주 시 국내 수행경험이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

세계 최고 의료 수준과 ICT를 보유한 우리나라지만 이 둘을 융합한 스마트 헬스케어는 미국·유럽·일본 등에 뒤처진다. 대형병원 의료ICT융합원장은 “우리나라는 원격의료를 해외 봉사활동에 적용할 정도로 발전된 기술을 갖고 있지만 여러 규제와 마인드 문제로 사업화를 하지 못한다”며 “국가적인 손해가 크다”고 토로했다.

신혜권기자 hk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