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 규모는 2011년 3조6000억원에서 올해 14조3000억원으로 다섯배 가까이 급성장했다. 하지만 해외 진출 발판이 될 내수시장이 좀처럼 열리지 않고 있다. 기업이 뛸 수 있도록 전력재판매·신재생에너지 연계형 시장이 형성돼야 한다는 게 업계 공통 의견이다. 단품 위주 산업적 접근에서 탈피해 ICT 기반 독자적 경쟁력 확보가 필요한 상황이다.
21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E홀에서 열린 ‘2015 배터리 트렌드 인사이트’에 국내외 산·학·연·관 전문가 200여명이 참석해 우리나라 ESS산업 경쟁력을 점검했다. 글로벌 시장 트렌드에 맞춘 한국기업 해외 진출 전략을 모색하고, 내수시장 확보를 위한 정부 정책 방향 개선을 주로 다뤘다.
◇해외 시장 진출에 목마르다
ESS 핵심 부품인 리튬이온전지 분야는 글로벌 1·2위 경쟁력을 확보했지만 단품 위주 사업보다는 에너지관리시스템(EMS)이나 소프트웨어 기반 시스템통합(SI) 사업으로 연계가 요구됐다. 미국 등 ESS 선진시장 주도권이 단품 업체가 아닌 솔루션 업체로 넘어간 것처럼 같은 흐름을 타야 한다는 분석이다. 솔루션 기반 ESS 시장은 중소기업 접근도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홍인관 코캄 ESS사업 총괄이사는 “미국 등 선진 ESS 시장이 다양한 형태로 성장하고 있지만 우리 기업 생태계는 ESS 핵심 부품 배터리나 전력변환장치(PCS)에 편중돼 있다”며 “미국 시장은 이미 50명도 안 되는 EMS·솔루션 업체가 배터리·PCS 대기업과 당당히 경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찬재 이온 상무는 “우리나라 ESS 시장이 특정 배터리 방식 위주라 다양한 시장 형성에 제약이 많다”며 “리튬에만 치중하고 있다”고 짚었다. 그는 “수요자가 원하는 형태로 시장 접근을 시도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며 “용도만 구분할 게 아니라 설치 현장이나 고객환경을 고려한 다양한 내수시장을 열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일본은 이미 레독스플로, 플라이휠 방식 배터리가 리튬계에 비해 부족함에도 미래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다양한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상무는 “글로벌 시장 선점을 위한 업계 피부에 와 닿는 전략이나 시범 사업이 없다”며 “실적 위주 정부 주도형 사업이 대부분이다 보니 대기업 중심 입찰 경쟁만 과열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전력망 기반 주파수조정(FR)용 ESS 시장이, 일본은 가정·상업시설 등 수요가 대상인 민간 시장이 활발해지고 있다. 여기에 중국과 독일은 전력피크 억제와 독립형 신재생에너지 시장이 빠르게 크고 있다. 이 시장을 잡아야 진정한 글로벌 경쟁 중심에 들어갈 수 있다는 의견이다.
◇정부·한국전력 “중소기업 참여 늘리겠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해외 수출 근거가 되는 ESS사업자 실적 향상을 위해 전력품질 개선을 위한 FR용, 신재생에너지 출력 안정화 등에 3년간 총 660MWh ESS 보급 사업을 벌인다. 우리나라 유일 ESS 시장 발주처인 한국전력도 중소기업 위주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황우현 한전 SG&ESS처장은 “중소기업 주도로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 개발과 차별화된 사업 모델을 만들어 해외시장 진출 발판을 제공하는 데 주력하겠다”며 “지난해 첫 오픈한 한전 스마트스테이션 사업을 올해 약 200개 중소기업이 참여하도록 ESS뿐 아니라 관련 솔루션 중소기업 참여를 독려하겠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이 개발한 기술과 아이디어 차원 사업 모델도 최대한 수용하도록 진입장벽을 낮추기로 했다.
한전은 지난해 말 구리 남양주 사옥에 첫 스마트그리드 스테이션을 구축해 피크전력 5%와 전력 사용량 9.6%를 감축했다. 올해 전국 29개 한전 사옥을 포함해 내년에는 175억원을 투입해 90개 사옥에 확대 구축할 계획이다.
정부도 올해 추가로 중소기업 위주 ESS기술 현장 적용 차원에서 철공소, 대학캠퍼스 등 전력수요가 큰 곳을 지정해 200억~300억원 규모 시범사업에 나선다. ESS 평가·인증 등을 통한 비상발전기 보급 확대, 금융 모델 결합 등 민간 주도형 사업을 지원할 방침이다.
이귀현 산업부 에너지신산업과장은 “중소기업 주도형 ESS 시장 조성에 힘쓸 방침”이라며 “ESS 시장 확대를 위해 REC가중치를 2017년 이후까지 연장하는 방안과 ESS 설치에 따른 세제 지원 방식으로 기업 참여형 사업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삼성SDI는 최근 ESS와 무정전전원공급장치(UPS)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모델 사업을 소개해 주목 받았다. 납축전지 위주 UPS 시장에 리튬이온 전지 기반 UPS 시장 개척 사례로 ESS 성능까지 지원하는 신개념 사업 모델이다.
삼성SDI는 납축 배터리 단점을 리튬이온 배터리로 극복한 강점을 살려 금융권 전산센터 시장 진출 사례를 소개했다. 배성용 삼성SDI 중대형전지사업부 부장은 “데이터센터 장치 용량이 100㎸A일 때 납축전지는 200Ah 용량이 필요하지만 리튬이온전지는 67.5Ah 용량이면 충분하다”며 “충전에 필요한 에너지를 덜 사용하고 UPS설치 공간이 절반으로 줄어 UES(UPS+ESS 합성어)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케미칼은 차세대 배터리 기술인 레독스플로 배터리 사업 전략을 처음 소개했다. 지난 2013년 미국 ZBB에너지와 제품 개발 계약을 맺은 후 최근 독자적 스택 기술을 개발했다. 곧 국내 첫 양산형 ESS도 출시할 예정이다.
강태혁 롯데케미칼 전문연구위원은 “외국 기술을 국산화해 화학적 배터리 위주 ESS 시장을 공략할 예정”이라며 “최근 자체 실증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 조만간 양산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