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의 기억 용량은 얼마나 될까

인간의 뇌는 얼마나 많은 걸 기억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기억력을 더 높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세상에는 보통 생각할 수 없을 만한 높은 기억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어떻게 이런 높은 기억력을 갖게 됐을까. 또 그렇지 않은 사람은 이런 높은 기억력을 가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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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카메라를 예로 들면 메모리카드 용량이 꽉 차면 더 이상 아무 것도 기록할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의 두뇌는 조금 다르다. 인간의 뇌는 훈련을 통해 기억력을 높이는 게 가능하다. 지난 2005년 당시 24세 중국 대학원생은 무려 6만 7,980자리에 달하는 원주율 숫자를 외우고 24시간에 걸쳐 처음부터 암송, 세계 기록을 세웠다.

이런 기록을 훨씬 상회하는 능력을 갖는 게 서번트 신드롬(savant syndrome)이다. 서번트 신드롬은 자폐증이나 지적 장애를 지닌 사람 중 일부가 특정 분야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증상을 말한다. 이름과 날짜는 물론 복잡한 장면도 세부 사항까지 모두 기억하고 한 번 본 풍경을 나중에 정확하게 그려내는 등 초인적 능력을 보이는 것이다.

서번트 신드롬이 발생하는 구조에 대해선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은 게 많다. 대부분은 선천성 원인에 의한 것으로 보이지만 특정한 계기로 서번트 신드롬 증상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10살 때 왼쪽 머리에 야구공을 맞은 걸 계기로 서번트 신드롬 증상을 보이기 시작해 자동차 번호판을 얼마든지 기억하거나 복잡한 달력 계산을 한 사람도 있다.

인간의 뇌는 1,000억 개에 달하는 신경세포, 뉴런으로 이뤄져 있다. 그 중 장기 기억과 관련한 추상세포(pyramidal cell)는 10억 개 정도라고 한다. 미국 노스웨스턴대학 폴 레버(Paul Reber) 교수에 따르면 만일 이 추상세포 개당 정보를 1개 밖에 기억할 수 없다면 우리의 뇌는 곧바로 용량이 꽉 차서 신경 고갈 상황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은 뉴런에서 수상돌기(dendrite)라고 불리는 나뭇가지 같은 돌출부가 성장해 뉴런끼리 이 돌기를 통해 다른 뉴런과 정보를 전달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또 이 뉴런끼리 결합 위치에 기억 정보를 보관하고 있다는 것. 뉴런은 다른 여러 뉴런과 연결되면서 뉴런 1,000개가 하나의 뉴런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마치 거미줄 같은 구조를 지닌 이 신경 네트워크는 인간의 뇌가 대량 정보를 기억할 수 있게 해준다.

폴 레버 교수는 뇌의 저장 능력에 대해 합리적인 계산 방법에 근거하자면 데이터 용량은 페타바이트에 달할 것이라고 말한다. 1페타바이트는 MP3 음악을 2,000년 동안 계속 재생할 수 있을 만한 충분한 공간이다. 하지만 실제로 인간의 뇌와 컴퓨터 메모리칩을 함께 비교하는 건 어렵다. 더구나 인간의 뇌에는 엄청나게 넓은 기억 공간이 있다.

그렇다면 앞서 설명한 것처럼 남다른 기억력을 보유한 사람은 특별한 뇌를 갖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세계기록을 보유한 달인들은 수많은 정보를 기억해내지만 훈련을 통해 높은 능력을 보유하게 된 것이다. 미국 기억력 대회의 우승자는 처음 두뇌 훈련을 할 때만 해도 카드 한 벌을 외우는 데 20분이 걸렸지만 나중에는 30초 안에 52장을 기억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이런 방법은 기억의 궁전(memory palace)이라는 명칭으로 오랫동안 효과가 입증되어 왔다. 자신이 알고 있는 가정을 이미지화해서 그 공간 속에 넣어 기억하려는 것을 배치, 기억하는 방법을 말한다. 결국 의지력만 있으면 누구나 기억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렇게 엄격한 훈련을 거치지 않고 초인적인 기억력을 발휘하는 건 가능할까. 호주 시드니대학 앨런 스나이더(Allen Snyder) 교수는 일부는 내면에 서번트를 지니고 있으며 적절한 기술만 있으면 이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고 시사했다. 보통 사람의 지능은 낮은 수준의 기억보다 높은 수준의 개념적 사고를 한다. 예를 들어 초원에서 사자를 봤다면 코나 다른 부분을 신경 쓰는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사자라는 걸 인식, 위험을 회피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서번트 신드롬을 겪는 사람은 세세한 내용에 대해선 모두 인지하고 기억해내지만 정작 큰 개념은 잡을 수 없다고 한다. 예를 들어 핸들이나 와이퍼, 헤드라이트 같은 건 다 알아채지만 정작 자동차라는 개념은 알아채지 못하는 식이다.

서번트 신드롬 환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자기장을 만드는 캡을 머리에 붙여 왼쪽 전두엽 신경 활동을 억제시킨 결과 그림을 그리는 능력이나 카드 매수를 세는 능력이 높아지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기억력 검증 테스트는 비교적 간단한 것이어서 앞으로 더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한다.

아직까지 이러 실험 결과에 회의적인 목소리도 있지만 앞으로 뇌 구조 해명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알려진 뇌의 한계를 결정하는 요인 중 하나는 뇌에는 일종의 병목현상이 있고 그 탓에 정보 흐름을 규제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는 인간의 정보 처리 한계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폴 레버 교수는 또 인생에서 기억의 한계는 하드디스크 같은 저장공간이 아니라 다운로드 속도에 있다고 말한다. 뇌가 기억으로 가득 차 버리는 상태가 아니라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정보의 속도가 뇌가 읽는 속도를 웃도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전자신문인터넷 테크홀릭팀


이상우기자 techholic@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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