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핫이슈]사용후 핵연료 관리에 새 계기 될 `파이로 프로세싱`

지난 22일 한국과 미국이 원자력협정 협상을 타결했다. 협상을 시작한 지 무려 4년 6개월 만이다. 1973년 발효된 한미 원자력협정도 42년 만에 전면 개정된다.

내용적으로 완전히 만족스러운 결과는 아니지만 실리와 명분을 적절히 챙겼다는 평가다. 기존 협정과 가장 큰 차이는 제한적이긴 하지만 사용후 핵연료 관리 자율성을 확보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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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연구원은 지난 2012년 세계 최초로 파이로프로세싱 전 공정을 공학 규모의 일관공정으로 모의할 수 있는 시험시설 `PRIDE`를 구축했다.

구체적으로 양국이 공동으로 연구하는 사용후 핵연료 건식 재처리, 즉 파이로 프로세싱과 관련해 첫 단계인 전해환원 연구를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됐다. 이후 실용화까지 후속연구는 공동연구 결과를 토대로 새로 설치할 예정인 고위급위원회에서 협의와 합의를 거쳐 추진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비록 단서가 붙었지만 계속 쌓여가는 사용후 핵연료를 재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것만으로도 성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사용후 핵연료 관리에 전기 마련

원자력발전소에서는 전기 생산을 위해 핵연료를 사용하고 수명이 다하면 원자로에서 배출한다. 보통 3년간 전기를 생산하면 수명을 다한다. 이때 배출되는 것이 바로 사용후 핵연료다.

사용후 핵연료는 강한 방사능을 배출하는 고준위 폐기물로 우리나라는 원전 내 임시저장 시설에 보관한다. 우리나라에서 1년에 생겨나는 사용후 핵연료는 약 700톤이나 된다. 문제는 원자력 발전 기간이 길어지면서 2016년부터 단계적으로 발전소별 임시저장 시설이 포화상태를 맞는다는 점이다.

사용후 핵연료는 연소 과정에서 생성된 플루토늄 약 1.2%, 우라늄보다 무겁고 방사선을 많이 내면서 반감기가 수만년에 이르는 미량 핵물질 약 0.2%, 방사선을 많이 방출하지 않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면 자연으로 침투해 토양을 오염시키고 반감기가 수십만년에 이르는 아이오딘-129 및 테크네튬-99 약 0.1%, 많은 양의 방사선을 방출하고 너무 뜨거워 접근조차 어려운 세슘과 스트론튬 약 0.5%, 핵분열에 참여하지 않은 잔여 우라늄을 포함한 안정원소 약 98%로 구성된다. 플루토늄 등을 다시 활용할 수 있다면 자원적 가치가 크다.

원자력 발전을 하는 세계 각국이 사용후 핵연료를 처리하는 방식도 다양하다. 프랑스는 사용후 핵연료에 포함된 플루토늄을 이용하면 상당 기간 동안 인류가 에너지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여긴다. 반면에 미국은 플루토늄이 핵무기로 전용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사용후 핵연료의 어떤 형질 변경도 수용하지 않고 다른 나라에도 형질 변경을 하지 말도록 권고하고 있다. 핀란드는 사용후 핵연료를 쓰레기로 판단해 지하 500~1000m 깊은 땅속에 묻어 생활환경에서 격리시킨다.

세계 각국은 친환경적이면서도 안전한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는 이전까지 한미 원자력협정으로 재처리 연구조차도 쉽지 않았다는 데 있다.

◇핵 확산 위험 없는 파이로 프로세싱

그동안 우리나라는 1973년부터 시행된 한미 원자력협정에 의해 사용후 핵연료에 변형을 가하는 어떤 행위도 할 수 없었다. 사용후 핵연료를 차곡차곡 쌓아둘 수밖에 없는 이유다.

미국이 사용후 핵연료에 변형을 가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재처리 과정에서 플루토늄을 단독으로 분리할 수 있고 이것이 핵무기 제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그러나 개정으로 사용후 핵연료를 재활용이 가능한 금속으로 바꾸는 전해환원 공정까지의 연구가 허용됐다. 전해환원은 파이로 프로세싱 전반부 기술이다.

미국은 20여년 전부터 파이로 프로세싱 기술을 개발해 오고 있다. 가장 큰 장점은 순수한 플루토늄을 분리할 수 없어 핵무기 제조에 전용될 수 없다는 점이다.

파이로 프로세싱 기술 핵심은 고온의 용융염 매질에서 전기를 이용해 사용후 핵연료를 처리하는 것이다. 첫 공정은 사용후 핵연료를 금속 물질로 변환시키는 것이다. 이 금속 물질에는 우라늄과 플루토늄, 반감기가 길고 방사선을 많이 방출하는 미량 핵물질이 모두 포함돼 있다. 이를 다시 앞서와 유사한 고온의 용융염 매질에서 전기를 이용하면 대부분 우라늄을 선택적으로 회수할 수 있다. 그런 다음 다시 전기를 이용해 잔여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포함한 미량의 핵물질군을 함께 회수한다.

이 같은 공정 특성상 파이로 프로세싱은 기존 재처리 기술과 달리 플루토늄의 선택적 분리 가능성이 차단돼 있다.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각 물질이 지닌 전기화학적 특성으로 인해 우라늄을 제외하고는 단독으로 분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파이로 프로세싱으로 회수한 핵연료 물질은 고속로에서 전기를 생산하면서 모두 안정한 원소로 변환시킬 수 있어 사용후 핵연료가 지니는 위험성을 모두 없앨 수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핵확산 위험성이 없고 환경 친화적인, 21세기형 사용후 핵연료 관리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골칫거리 사용후 핵연료 처리에도 숨통

파이로 프로세싱이 상용화되면 사용후 핵연료를 직접 처분할 때에 비해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규모를 100분의 1 정도로 감소시킬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원자력연구원은 “우리나라는 소규모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만 확보해도 앞으로 100년 이상 사용후 핵연료 관리라는 골치 아픈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고준위 폐기물 관리기간을 수십만년에서 수백년으로 단축시키는 것도 장점이다. 고준위 폐기물 관리 안정성이 크게 향상된다.

또 핵확산 저항성이 뛰어나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갈망하는 국제사회 바람에도 부합한다.

단 파이로 프로세싱을 거쳐 나온 원료는 일반 원자로가 아닌 ‘소듐냉각고속로’에서 사용해야 하고 이를 개발하기까지 10년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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