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어렵다”는 말로는 표현이 부족한 요즘이다. 디플레이션에 이미 진입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한국은행은 사상 첫 1%대 기준금리를 결정했다. 사소한 소비에 지갑을 닫는 사람도 부쩍 늘었다. 정부는 빚 내서 집을 사라고 하지만 하우스푸어 신세로 전락할까 주저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경제를 살리자”는 주장은 메아리로 맴돈다. 최근 불거진 임금 인상 논란이 지금 상황을 여실히 보여준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수차례 기업 임금 인상을 촉구했다. 늘어난 봉급만큼 소비가 확대되면 경기 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재계는 임금 인상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맞섰다. 많은 기업이 이미 올해 임금을 동결했다.
금융권도 요지부동이다. 최 부총리는 금융권이 경제 활성화에 동참해 달라며 연이어 ‘보신주의 타파’를 강조했다. 예대 금리 차이만 바라보지 말고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어 부가가치를 창출하라는 소리다. 여전히 금융권은 위험부담을 감수할 생각이 없다. 최 부총리는 최근 금융당국 수장, 협회장 등과 만나 금융개혁을 당부했다.
‘부탁하는’ 정부와 ‘거절하는’ 기업의 모습에 국민은 적잖이 실망했다. 무엇보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계속 평행선이다. 정부가 지난해 마련한 기업소득환류세제와 같은 ‘채찍’도 별다른 효과를 보여주지 못한다. 그 사이 우리 경제는 디플레이션에 더 다가섰다.
정부 전략 수정이 필요하다. 법적 제재로도, 심리적 압박으로도 꿈쩍 않는 기업을 스스로 움직이게 만들어야 한다. “경기 회복을 위해 기업이 나서달라”는 당부는 멈추고 기업의 자발적인 투자를 유도할 수 있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전략에는 너지(nudge)가 필요하다. 너지는 똑똑한 선택을 이끄는 부드러운 개입이다. ‘쓰레기를 버리지 마시오’ 푯말 대신 아름다운 화단 조성으로 투기 문제를 해결한 어느 지자체의 지혜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기업이 자발적으로 투자하고 임금을 올리고 고용을 늘릴 수 있도록 정부가 ‘부드러운 개입’을 고민할 때다.
유선일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