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수 칼럼]우울한 케이블TV 스무살 생일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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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다 할 수 있다는 청년 특유의 자신감이나 패기도, 막연한 희망도 없다. 뭔지 모를 불안감, 패배의식에 위기 목소리만 크다. 3월로 출범 20주년을 맞은 케이블TV산업계 분위기다.

그만큼 상황이 녹록지 않다. 사실상 절체절명 위기다. 지상파방송 재전송료 인상 압박부터 인터넷과 모바일 동영상 서비스까지 경영 환경이 갈수록 나빠진다. 무엇보다 통신사업자 IPTV 공세에 속수무책이다. IPTV가 본격화한 2009년을 정점으로 케이블TV 가입자 감소세가 이어졌다. 1000만 가입자를 넘은 IPTV 성장세는 올해도 이어진다. 지난해 말 391만명까지 좁혀진 가입자 격차가 올해 아예 역전될 수 있다.

업계 속사정마저 나쁘다. 양대 산맥인 CJ, 티브로드는 오너 공백에 따른 리더십 위기에 처했다. 씨앤엠을 비롯한 다른 업체 사정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케이블TV 성공시대를 이끈 전문경영인마저 업계를 떠나는 마당이다.

업계는 나락에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안으로 디지털TV 전환, 초고선명(UHD), 클라우드 방송, N스크린 기반 OTT(Over The Top) 등 서비스 고도화를 추진한다. 밖으로 경쟁자 규제도 꾀한다. 문제는 둘 다 여의치 않다는 점이다.

유료방송 합산규제 법안만 해도 어렵사리 국회 상임위를 넘었지만 본회의 통과는 연기됐다. 최종 통과해도 3년 뒤엔 일몰인 데다 KT 외 IPTV 업체의 입지만 넓혀 케이블TV업계 실익이 의문시된다. 그 대가로 접시 없는 위성방송(DCS)이나 위성방송 VoD서비스가 허용되면 되레 역풍을 맞는다. 합산규제는 미봉책일 뿐이다.

케이블TV 서비스 고도화도 만만치 않다. 통신방송 융합 주도권이 이미 IPTV, 인터넷·모바일 업체로 넘어갔으며 소비 행태마저 확 달라졌기 때문이다. PC에 이어 스마트폰, 태블릿PC까지 새 유통 창구는 갈수록 힘을 얻는다. 스마트TV까지 가세하면 유선 기반 방송플랫폼 입지는 더욱 좁아진다.

초고화질 스트리밍 서비스 시대를 열 5세대(G) 이동통신이 본격화하면 유선 방송시대는 거의 종말에 가까워진다. 2018년 시범서비스, 2020년 상용화가 목표다. 5년이 채 남지 않았다. 이동통신 인프라가 전혀 없는 케이블TV업계에는 진짜 악몽이다. 서둘러 대비해야 한다. 제4 이동통신 사업이 대안이다. 하지만 이를 추진할 의지도 구심점도 업계에 없다.

안팎으로 뒤숭숭한 업계 분위기다. 이대로 가면 20년 전 중계유선방송 시절로 되돌아갈 것이라는 우려가 결코 허튼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그 어느 때보다 케이블TV협회 역할이 절실해졌다. 업체마다 이런저런 이유로 흔들리기에 더욱 그렇다. 협회가 이익단체를 넘어 리더십을 발휘할 시점이다.

임박한 차기 협회장 선거에 저절로 관심이 쏠린다. 정·관계와 케이블TV업계 출신 2파전 양상이다. 정·관계 출신은 규제 이슈 대응에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하지만 규제 이슈가 예전 같지 않다. 외부 낙하산 효용성 의심과 거부감은 오히려 커졌다. 업계 출신은 회원사를 응집할 리더십을 보일 수 있다. 다만 지상파, 종편, 통신사업자, 신규 플랫폼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을 묘책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리더십과 전문성을 겸비한 차기 협회장이 나온다면 가라않은 업계 분위기를 다시 바꿔놓을 수 있다. 플랫폼 시장 변화에 맞는 새로운 20년 설계도 가능하다. 우울한 잔칫날 조금이나마 미래 희망을 얘기하며 웃음을 되찾는 협회장 선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신화수 논설실장 hs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