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그 프로그램 ‘도찐개찐’이 유행이다. ‘거기서 거기’ ‘오십 보 백 보’ ‘도토리 키재기’라는 말과 같은 의미다. 도찐개찐은 윷놀이에서 파생된 말로 도(한 칸)나 개(두 칸)나 남의 말을 쫓아 잡을 수 있는 거리, ‘별 차이 없음’을 의미한다. 바른 표기는 도 긴 개 긴이라고 한다.
최근 신용카드업계가 자동차 복합할부 금융 수수료 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다. 현대차외 다른 완성차 업체까지 가세해 카드업계에 앞다퉈 복합할부 수수료 인하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그 여파로 비씨카드는 복합할부 금융을 중단했고, 2월 신한카드, 3월 삼성카드가 현대차와 계약 갱신을 앞두고 있다.
문제는 복합할부 수수료 문제가 금융계와 산업계로 확전되고 있다는 점이다. 수수료 문제는 카드사와 가맹점 간 맺는 일종의 ‘공생’ 협약이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수수료율에 문제가 없는지, 법적으로 가이드라인이 없는지를 면밀히 들여다봐야 한다. 과거 금융당국은 연매출 2억원 미만 영세가맹점 수수료율을 1.5%로 내리고 이를 카드사에 강제한 바 있다.
그런데 현대차 앞에서는 그야말로 헛기침만 하는 허수아비로 전락했다. 엄밀히 말하면 골치 아픈 복합할부 수수료 문제에 발을 담그기 싫다는 모양새다. 반면 금융사에는 옥상옥 형태의 규제 일변도를 강제한다. 수수료 문제는 금융당국이 마땅히 나서서 중재를 하거나 풀어야 할 시급한 과제다. 그런데 대기업 눈치만 살피며 ‘시장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는 논리는 창조금융에 시동을 걸겠다는 공허한 메아리와 무엇이 다를까. 업계가 처한 현실을 외면하고, 약자에게 강한 지금까지의 금융당국 모습 그대로 ‘도 긴 개 긴’이다.
오죽하면 카드사들이 이들 완성차업체와의 전쟁을 피하기 위해 ‘변형된 복합할부’ 상품까지 제안했을까. 이제라도 산업계와 금융계가 복합할부 문제로 파국으로 치닫지 않도록 적극 중재에 나서야 한다. 혼자 힘으로 안 된다면 정부 부처를 끌어들여서라도 당장 답을 제시하기 바란다.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