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쏜살같다. 한 해가 저물어 어느덧 새해가 눈앞이다.
시간의 연속성에서 보면 새해는 오늘과 맞닿은 내일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오늘과 단절된 새날을 이야기한다. 아쉬움을 잊고 새로운 각오를 다지기 위해서일 것이다.
세밑과 새해의 경계인 이때 희망을 이야기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럴 여유를 주지 않는다. 풀리지 않는 경기침체로 일상은 더욱 어려워졌고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구조조정 소식에 가장은 물론이고 가정이 흔들린다. 직장인들 사이에선 살아남으라는 이야기가 새해 덕담 아닌 덕담이 됐다.
모두가 상황이 달라지길 바라지만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다. 한때 대학생 입사 1순위로 꼽힌 외국계 기업 A사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인원을 감축했다. 내년에도 실적이 악화되면 피해갈 수 있을지 알 길 없다.
앞으로가 더 큰 걱정이라는 얘기가 많다. 제2의 외환위기란 말도 심상치 않게 들린다. 그도 그럴 것이 기업들의 체력 저하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올해 동양, STX, 동부가 흔들렸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도 안심할 수 없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가계부채는 1000조원을 넘었고, 공공부문 부채까지 합치면 2000조원에 육박한다.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과 같다. 노령화로 인해 생산가능 인구가 감소하는 등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은 우울하다.
걱정과 한숨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놓은 상태에서 가능한 일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희망을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무조건적일 수는 없다. 현실과 동떨어진 건 희망은 망상에 불과하고 실현 가능성 없는 몽상일 뿐이다. 어제를 잊을 것이 아니라 철저한 반성과 냉정한 현실 인식에 새로운 희망의 뿌리를 둬야 한다. 그래야 희망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으로 작동할 것이라 믿는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