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대한상공회의소 등 8개 경제단체가 정부에 건의한 규제는 총 153건으로 이 중 84건이 경제, 나머지 69건이 사회 분야다. 정부는 이 중 114건을 기요틴(단두대)에 보내 해결하기로 했다. 업계 의견을 그대로 수용한 것은 61건으로 부분수용이 18건, 대안 마련이 35건이다.
정부는 개선을 확정한 114건 중 특히 18건에 의미를 뒀다. 이 과제는 그동안 규제개혁신문고를 통해 지속적으로 요구가 접수됐지만 수용되지 않은 고질적 규제로, 이번 개선을 확정해 ‘규제 기요틴(대규모 규제개혁)’ 방식의 규제개혁 효과를 증명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는 공공기관이 전자문서를 보관하고 원본을 폐기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이번 규제개혁이 확정된 과제 중 공공발주 소프트웨어(SW)에 대한 개발자 권리 강화가 눈에 띈다. 중앙정부가 발주할 때 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와 계약할 때에도 발주기관과 개발자가 SW를 공동 소유할 수 있도록 한다. 특허는 당사자간 협의를 거쳐 개발자 단독소유가 가능하도록 계약예규를 개정한다.
공인인증기관 등록 및 인증방법 평가 관련 규제도 완화한다. 공인인증기관 지정요건인 자본금 80억원 이상이 과도하다고 판단, 50억원 수준으로 낮춘다. 인증방법 평가 신청을 금융기관과 전자금융업자 외 다른 업체도 할 수 있도록 관계규정을 개정한다. 이를 통해 새로운 공인인증기관 설립이 늘고 인증방법평가 신청이 다원화 돼 전자거래가 한층 활성화될 것이라는 기대다.
전기공사시 전력신기술 지정 기업 우선 참여로 진입장벽이 존재한다고 판단, 전력신기술 지정제를 폐지한다. 대신 종전 지정업체 등 보완방안을 마련하고 향후 전력분야 신기술은 NET 제도를 활용한다.
관리지역 내 공장설립 시 건폐율 규제 완화 등 건의와 관련해서는 계획적 관리방안을 미리 세우면 건폐율 완화 등 인센티브를 부여할 수 있도록 개선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또 노후한 거점 산업단지 구조 고도화 사업의 시행 가능면적을 전체 산단 면적의 10%에서 30%로 확대한다.
중소·벤처 부문에서는 창의적 아이디어에 기반한 숙박·음식점업의 벤처기업 인증을 허용하고 창업자금 지원 대상을 확대하기로 했다. 개인기업의 입주를 제한하는 일부 창업보육센터의 자체운영규정을 개선하고, 방사청의 물품적격심사 시 벤처인증기업을 우대할 방침이다.
환경 분야에서는 영세사업자와 중소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플라스틱 폐기물 부담금면제기준을 종전 매출액 10억원 미만에서 30억원 미만으로 확대한 게 눈에 띈다. 경제자유구역 내 공장을 설립하면 면적에 관계 없이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받지 않도록 했다. 또 석탄을 사용하는 산업단지 집단 에너지시설에서 생산된 잉여 열을 환경 영향 등을 고려해 주변 지역 냉난방용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한다.
사물인터넷(IoT) 서비스와 관련해서는 단순 사물의 위치 수집·이용 시 사용자 동의를 매번 받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 최초 위치정보 수집 시에만 관련법에 따라 동의를 받도록 했다. 또 ISO27001 인증 획득 수출기업 중 일정요건을 갖추면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을 면제하는 대신 사후관리하기로 했다.
업계는 폭넓은 분야의 규제개혁 추진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온실가스배출권거래제의 전반적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업계 주장에 수용이 곤란하다고 기존 입장을 되풀이 하는 등 수용되지 않은 과제에 대해서는 아쉽다고 반응했다. 또 일부는 각 정부 부처에서 이미 추진을 발표한 내용이어서 규제 기요틴 효과를 다소 부풀린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정은보 기획재정부 차관보는 “이미 정부가 추진하는 과제도 경제단체가 규제로서 중요한 사항이라고 판단해 건의했고 이를 모수로 나열한 것”이라며 “이미 추진하고 있는 과제도 결론이 안 난 사례도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실현되도록 노력한다는 의미에서 수용으로 분류했다”고 설명했다.
유선일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