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내 기업이 설립한 부설연구소 수가 이미 5000개를 넘어섰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가 조사한 자료로 한해 5000개 이상 부설연구소가 설립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연말까지 설립될 연구소 수는 6000개 안팎에 달할 것이란 예상이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한국 기업의 경쟁력 비결로 지속적이며 과감한 연구개발(R&D) 투자를 꼽는다. 이는 우리나라가 처한 좁은 내수 시장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산업계의 자발적 노력의 결과물이란 시각이 많다. 세계를 대상으로 비즈니스를 펼쳐야 하고 그 결과 남들보다 한발 앞선 우수한 기술과 서비스를 내놓아야 한다는 인식이 작용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것이 글로벌 기업과 소비자에게 먹혀 든 셈이다.
우리나라의 R&D 투자비중은 매우 높다. 지난해 전체 R&D 투자규모는 59조3009억원에 달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자 비중은 4.1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정부는 2017년까지 GDP 대비 R&D 비중을 5%로 높인다는 계획이다.
R&D는 곧 상품의 가치와 직결된다. 동일한 제품을 만들어도 보다 우수한 품질로 나타난다. 디자인측면도 마찬가지다. 집중적인 연구만이 고객이 이해하고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제품으로 나타난다. 경쟁사와 비슷한 수준으로 투자를 한다면 차별성을 확보할 수 없다. 품질의 중요성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소비자들이 현명해지기ㅣ 때문이다. 어느 제품이 어떤 결함이 있고 품질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 언제 어디서나 파악할 수 있다. 적당히 만들어서 팔았다가는 바로 소비자 외면으로 이어진다.
최근 중국 기업의 무서운 성장 측면에서도 품질은 더욱 강조된다. 기술이 보편화되면서 중국 기업이 무서운 속도로 우리를 추격하며 글로벌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과거 수년의 기술격차가 존재하던 분야에서도 어느새 우리를 추월하거나 턱밑까지 추격했다. 그들과의 차별성은 기술 바탕의 품질 밖에 없다. 국내와 비교해 여전히 낮은 인건비 그리고 광대한 소비시장 등을 봤을 때 우리가 동등한 수준으로 대응해서는 해법을 찾기 어렵다. 결국 품질로 차별성을 확보해야 한다. 만약 글로벌 소비자가 특정 제품에 대해 ‘중국산과 차이가 없다’고 인식 하는 순간 그 기업은 버티기가 어렵다. 당연히 낮은 가격의 중국산을 선택하게 된다. 우리 기업이 발을 디디기가 힘들게 된다.
R&D는 다양하게 접근해야 한다. 투자 대비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R&D 조직 내 협력이 한 방법이다. LG그룹은 계열사 간 R&D 시너지로 제품 품질 경쟁력을 크게 개선했다는 평가다. 그룹 시너지팀이 계열사에 흩어져 있는 기술·서비스 경쟁력을 하나로 묶은 결과다. 과거에는 한 회사가 제품 완성단계에 관계사에 기술 또는 서비스를 요청하는 구조였다면 지금은 상품 기획 단계부터 함께 고민을 한다. 이는 바로 기술 경쟁력 강화로 나타난다. 만약 2년 후 제품 상용화가 목표라면 각사 기술로드맵에 따라 2년 후의 기술이 뭉쳐 제품이 나타나게 된다.
품질과 함께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브랜드다. 고객은 믿을 수 있는 회사 제품을 찾는다. 정보가 넘쳐 나면서 더 신뢰할 수 있는 제품에 자연스럽게 손이 간다. 브랜드 인지도 역시 단순히 마케팅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 소비자에게 제품을 꾸준히 알리는 한편, 품질이 뛰어나다는 것을 적극 알려야 한다. 효과는 막대하다. 동일한 기술의 제품이라도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에 팔 수 있다. 국내 굴지의 가전업체들이 중국산 제품과 비교해 가격이 더 높아도 여전히 잘 팔리는 이유다. 중국 업계의 TV기술력이 많이 개선됐다고 해도 아직 점유율이 오르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대기업 출신 한 관계자는 “1990년대만 해도 우리의 TV 기술력이 이미 일본 기업을 앞질렀다고 판단했지만 시장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했다”며 “그만큼 브랜드 힘은 막강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산업계 글로벌 기술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적극 지원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3조1329억원 규모의 새해 산업기술 R&D 통합 시행계획을 최근 발표했다. 전년 대비 약 6.6% 증가한 규모다. 신규 R&D 사업도 스마트공장 고도화 기술 개발, 첨단센서 육성사업 등 총 22개에 2463억원에 달한다. 민간 기술경쟁력 향상에 정부가 적극 지원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영속하는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기술 개발과 브랜드 인지도 확산에 한시라도 노력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 불황을 이유로 투자에 소극적으로 돌아서면 바로 경쟁사 또는 후발주자의 추월과 견제를 받는다. ‘품질과 브랜드가 우수하다’는 평은 하루아침에 얻는 것은 아니다. 꾸준한 기술개발과 브랜드 인지도 확산을 위한 투자에 적극 나선다면 많은 기업들이 그 영광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김준배기자 j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