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영세가맹점 마그네틱(MS)카드 결제 단말기를 IC단말기로 교체해 주는 ‘영세가맹점 IC단말기 전환 사업’의 이른바 ‘공짜 약정’이 최대 걸림돌로 부상했다. 일반적으로 밴(VAN) 대리점은 영세가맹점에 결제단말기를 최소 1년에서 3년을 사용하는 조건으로 무상으로 설치해 주는 ‘공짜계약’을 하는데, 해당 기간 내 IC단말기로 교체하게 되면 최고 2000억원에 달하는 위약금을 가맹점들이 물게 될 판이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 같은 내용의 가맹점과 밴 대리점 간 체결한 공짜 약정계약서가 IC단말기 교체사업의 새 ‘뇌관’으로 부상했다.
밴 대리점과 가맹점 간 맺은 약정서는 휴대폰 구매 약정과 비슷한 것으로, 밴 대리점은 가맹점에 결제단말기를 최소 1년에서 3년을 사용하는 조건으로 무상으로 설치해준다. CCTV 설치나 일정 프로모션 지원비 등도 함께 제공한다.
본지가 입수한 영세가맹점 ‘POS 설치 및 밴(VAN) 이용 계약서’에 따르면 임의해지 조항이 포함돼 있다. 무상으로 결제단말기를 설치·유지보수해주는 대신 가맹점이 임의해지하거나 기기를 변경했을 때 해지 시점부터 위약금을 변상해야 한다는 조건이다. 통상 계약 체결 후 6개월 미만은 물품 총액의 300%를, 6개월 이상이면 200%를 변상해야 한다.
POS를 예로 들면 물품 총액은 약 300만원으로 책정하는데 6개월 내 밴 대리점과 계약을 해지하면 900만원의 변상금을 가맹점이 물어야 한다. 캣(일반결제)단말기는 전국 영세가맹점 총액기준으로 발생 가능한 위약금이 약 1800억원 수준이며 POS단말기를 합치면 위약금은 천정부지로 치솟게 된다.
문제는 금융당국이 추진 중인 IC결제 단말기 보급 사업에 기존 밴 대리점과 가맹점 약정 관련 대응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기존 밴 대리점을 거치지 않고 IC결제단말기를 보급하게 되면 가맹점 대상으로 위약금을 물릴 수밖에 없다는 게 밴 대리점 측 주장이다.
한 밴 대리점 관계자는 “엄연히 가맹점과 대리점 간 맺은 정식 계약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며 “정부가 IC결제단말기를 조급하게 공급하다 보니 이 같은 사실을 간과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위약금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금융당국은 파악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마땅한 대안도 없다. 발생하는 위약금을 가맹점이 전액 배상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는 셈이다. 가맹점은 위약금을 내면서까지 단말기를 교체할 필요성이 없다는 판단이다.
정부가 발생하는 위약금을 전액 보전해주는 방법이 있지만 이마저도 ‘배보다 배꼽이 더 큰’ 투자가 발생한다.
업계에서는 약정기간이 종료되는 3년 후로 보급사업 기간을 연장하는 방안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당초 계획한 IC보급사업 시점을 늦추는 것이어서 명분이 없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위약금 문제에 대해 명확한 대안이 나오지 않는다면 IC결제단말기 보급사업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영세가맹점-밴대리점간 결제단말기 이용 계약서 조항>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