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영화전문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 HBO가 내년부터 독자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 진출을 발표하면서 미국 방송 업계가 술렁였다. HBO는 타임워너미디어그룹 자회사로 타임워너케이블을 비롯한 유료방송사업자와 채널 계약을 맺고 방송을 송출해 왔다. 그 다음날 지상파방송사 CBS도 인터넷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했다. 케이블TV·위성TV·IPTV 등 유료방송에 의존하는 PP와 달리 자체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는 CBS마저 인터넷 시장에 뛰어들면서 미국 방송 업계 판도가 변하고 있다.
그동안 미국 케이블방송사업자·위성TV 등 다채널방송사업자(MVPD)는 PP와 콘텐츠 수급 관련 협상에서 주도권을 쥐어왔다. 미디어 업계는 2000년대 인수·합병(M&A)을 통해 몸집을 불리는 한편 수직계열화를 시도했다. CBS그룹, 컴캐스트그룹, 월트디즈니, 뉴스코퍼레이션, 타임워너미디어그룹 등 플랫폼과 콘텐츠 제작사를 동시에 거느린 몇개 미디어그룹으로 시장이 재편되면서 한번의 변화가 있었다.
MVPD는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1억186만4000명의 가입자)을 자랑하고 있지만 플랫폼과 PP간 갈등이 잦아졌다. 시장조사기관 SNL에 따르면 올해 들어 재송신 협상 결렬로 지상파 송출 중단 사례가 4회 이상, 방송권역 수로 따지면 78개 지역에 이른다. 지상파 외에도 막강한 자금력을 보유한 PP가 재송신 협상에서 주도권을 쥐는 사례도 나타났다. SNL은 MVPD가 PP에 제공하는 재송신료가 지난 2012년 24억700만달러(약 2조5467억원)에서 올해 45억6880만달러(약 4조 8338억원)로 두 배가량 늘어났다고 추산했다.
유료방송·PP·지상파간 알력다툼 구도에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라는 새로운 변수도 등장했다. 넷플릭스·훌루·유튜브 같은 온라인비디오플랫폼(OVD, 인터넷스트리밍) 업체다. 넷플릭스는 미국 내 가입자수가 지난 9월말 기준 3720만명으로 초고속 성장했다. 기존 플랫폼 업체들도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출시하면서 실시간스트리밍(OTT)으로 대응했지만 오히려 이 때문에 OTT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고 포화 상태에 이른 것으로 업계는 파악하고 있다. 실제로 넷플릭스의 지난 3분기(7~9월) 가입자 수가 예상치 368만명을 밑도는 300만명으로 집계돼 우려는 더욱 커졌다.
◇인터넷 스트리밍 변수, 같은 환경 다른 선택
인터넷 스트리밍 시장 내 사업자들 간에는 가입자를 뺏고 빼앗기는 치킨게임이 예고되고 있지만 여전히 스트리밍 시장은 성장하고 있다. 이와 반대로 미국 케이블TV 가입자 수는 지난 2010년 6039만명에서 2011년 5859만명, 2012년 5694만명, 지난해 5500만명, 올해 5350만명으로 꾸준히 감소추세다.
업계 내 회사들의 전략은 정반대 행보를 보인다. 몸집을 더 키워 규모의 경제를 이용하려는 측이 있는가하면 아예 조직을 쪼개고 슬림화해 신사업 기회를 엿보는 쪽도 있다. 전자가 컴캐스트·21세기폭스·리버티미디어·AT&T 등이다. 후자로는 타임워너와 가네트·트리뷴그룹 등이 꼽힌다. 루퍼트머독이 소유한 21세기폭스는 지난해 말 타임워너케이블을 800억달러(약 82조3600억원)에 인수하겠다고 제안했다가 거절당했다. 머독이 물러난 뒤 리버티미디어가 차터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인수에 나섰지만 그 후 컴캐스트가 더 높은 인수가액을 제시하면서 최종 M&A 합의가 이뤄졌다. 컴캐스트가 타임워너케이블을 인수하면 컴캐스트는 케이블TV 가입자 3300만명을 확보해 전체 케이블 가입자의 5분의 3, 초고속인터넷 가입자 35%를 보유하게 된다. 미 연방통신위원회(FCC)가 한 개 MVPD가 점유율 30%를 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경쟁사에 가입자 이전, 별도 회사 분사 등을 고려해야 하지만 초대형 방송플랫폼 기업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AT&T와 디렉TV 역시 지난 5월 합병을 발표했다. 디렉TV가 진입하지 못했던 미국 내 1500만 지역에 위성방송을 송출하면서 위성·IPTV·초고속인터넷 결합 상품으로 가입자를 끌어 올 수 있다. 유료TV가입자 2600만, 이동통신·인터넷 가입자 포함 가입자가 7000만명에 달할 전망이다. 랜달 스티븐슨 AT&T 최고경영자(CEO)는 미 하원 청문회에서 “양사 결합으로 브로드밴드 사업 시장 판도를 바꿔놓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분사·매각을 탈출구로 삼는 업체도 있다. 타임워너는 타임워너케이블을 매물로 내놓고 타임·포천 등 주요 잡지를 타임으로 분사시켰다. CNN·TNT·TBS 방송은 전 세계 자회사 직원들도 10% 감축하기로 했다. 가네트그룹·트리뷴그룹도 TV방송사와 신문·잡지를 분리해 종이매체를 분사시키는 등 조직 개편에 착수했다.
HBO의 스트리밍서비스 전환은 이런 개편 도중에 나왔다. 타임워너케이블을 매각하면서 HBO 채널 송출이 예전보다 원활하지 않은 데다 미국 내 영화채널 1·2위를 다투는 HBO의 수익을 플랫폼사와 나누지 않고 직접 거둬들이겠다는 복안이다. 유료TV 패키지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챙기지 못한 단기 가입자나 특정 프로그램 시청자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방송업계 승자 누가 될까
업체들마다 자사 성공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리처드 플레플러 HBO CEO는 지난 16일 타임워너 투자자들에게 “HBO를 원하는 시청자들에게 모든 장벽을 치워줘야 할 때”라며 “미국에서 HBO 서비스에 가입하지 않은 시청자가 8000만명이나 된다”고 밝혔다. 인터넷스트리밍 시장이 가진 잠재력에 표를 줬다.
이에 질세라 컴캐스트 자회사 NBC유니버설 CEO 스테판 버크는 지난 3분기 사업설명회에서 “HBO·CBS의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 사업 진입이 놀라울 따름”이라며 “가입자 중복 때문에 인터넷을 통해 사업을 확장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컴캐스트의 자신감은 규모의 효과를 톡톡이 누리고 있는데서 나왔다. 케이블TV 가입자 수는 줄고 있지만 초고속인터넷 가입자 수가 늘어나 매출·수익은 오히려 성장했기 때문이다. 컴캐스트그룹은 초고속인터넷과 NBC 방송매출 증가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매출액이 110억달러(약 11조6204억원)로 5.2% 늘었다. 당기순이익은 소득세율 조정 등에 힘입어 26억3000만달러(약 2조7791억원)를 기록, 49.7% 성장했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