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UHD 방송 700㎒ 아닌 다른 대역서도 방송 가능

국정감사에서 정치권이 지상파 방송사 지원사격에 나서면서 한동안 소강상태였던 700㎒ 논란에 다시 불이 붙었다. 방송사들은 저녁 메인 뉴스를 통해 700㎒를 초고화질(UHD) 방송에 할당해야 한다며 주장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심지어 정부가 국가재난안전통신망(재난망) 구축을 빌미로 ‘알박기’를 통해 통신사에 700㎒ 대역을 할당하려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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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UHD 방송에 700㎒를 할당해야 한다는 방송계의 주장은 여러 면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과연 전 국민을 상대로 하는 ‘무료 보편적 서비스’가 가능한지, 다른 대안이 있음에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있는지, 700㎒로 UHD 방송을 했을 때 또 다른 문제는 없는지 등을 살펴봐야 한다.

정치권과 방송사는 옛 방송통신위원회의 모바일광개토플랜에 따른 주파수 할당 결정도 전면 부정하면서 원점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일관된 정책을 유지해왔으며 다양한 분석을 기반으로 한 결정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게 전문가의 주장이다.

◇원점 재논의, 합당한가

지난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미방위) 국감에서 여야 의원은 미래창조과학부의 700㎒ 할당 정책을 성토했다. 2012년 논의 당시 UHD나 재난망 이슈가 부각되지 않았기 때문에 주파수 할당을 원점 재검토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 의원은 과거 방통위의 700㎒ 할당 결정이 행정절차를 무시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정부는 2012년 1월 모바일광개토플랜 1.0 당시부터 일관된 정책을 유지해왔다. 700㎒ 대역 40㎒ 폭을 통신용으로 우선 배정할 것을 수차례 공표했다. 지난해 말 미래부가 발표한 전파진흥기본계획에서도 이 내용을 재차 확인했다. 방통위와 미래부의 700㎒ 정책방향 공표는 ‘신뢰보호 원칙’이 적용되는 ‘공적 견해 표명’에 해당한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신뢰보호 원칙은 행정청 행위에 대한 사인(私人)의 합리적이고 정당한 신뢰는 보호돼야 한다는게 법 원칙이다. 즉 700㎒ 관련 정부 정책이 아직 고시나 법으로 제도화되진 않았지만 지속적으로 표명돼왔기 때문에 충분히 신뢰보호 원칙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과거 여러 대법원 판례가 이를 뒷받침한다.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 관계자는 “정부는 2012년 발표한 모바일광개토플랜에 대해 지속적으로 얘기해왔기 때문에 신뢰보호 원칙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며 “무엇보다 주무 부처의 결정을 번복하게 되면 정부정책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른 대역에서도 UHD 방송 가능

지상파 방송사는 UHD 방송의 무료 보편성과 공공성을 앞세워 700㎒ 할당을 요구하고 있다. 700㎒를 할당받지 못하면 전국 UHD 방송이 어려우며 수도권과 지방에 차별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700㎒가 아니더라도 UHD 방송은 충분히 진행할 수 있다는 게 ICT 업계와 주파수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미래부와 방통위가 운영하는 주파수 연구반은 디지털방송 예비 대역으로 UHD 방송이 가능하다고 분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주파수 전문가는 “정부 주파수 연구반은 DTV 예비대역(VHF)에서 30㎒ 폭을 사용할 수 있다고 계산했는데 주파수 조정을 하면 50㎒까지도 얻을 수 있어 이를 700㎒의 일부 대역과 함께 UHD 방송으로 활용할 수 있다”며 “방송협회는 VHF 대역에 맞는 안테나 문제를 얘기하는데 현재 시중에서 VHF 사용하는 안테나로도 UHD 방송을 수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상파 방송이 UHD 방송으로 요구하는 700㎒ 대역의 698㎒~752㎒ 구간이 이미 같은 대역을 통신용으로 활용하는 일본에 심각한 전파간섭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일본은 재작년 6월 700㎒ 대역 60㎒ 폭을 통신용으로 할당했다. 718㎒~748㎒ 대역을 3개 통신사가 업링크 용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우리나라가 해당 대역을 UHD 전파 송출용으로 사용하면 ‘라디오 덕팅’ 현상으로 심각한 간섭이 발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지난 1990년대 한·일간 간섭 현상이 발생해 수년간 논의 끝에 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

◇해외선 700㎒ 통신용 할당 잇따라

통신 업계는 급증하는 모바일 트래픽 해소와 국제 추세에 따른 효율적 이용을 위해 700㎒ 대역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국내 모바일 트래픽은 지난 2009년 말 400테라바이트(TB)에서 지난해 말 8만4078TB까지 210배 증가했다.

급격히 늘어나는 트래픽 해결과 이용자에게 보다 나은 통신 서비스 품질 제공을 위해 주파수 확보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미국은 이미 통신용으로 700㎒를 할당했고 이런 추세는 남미와 유럽, 아시아 등 많은 지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통신 업계는 700㎒ 대역을 통신용으로 할당할 경우 방송용으로 할당하는 것보다 경제적 가치가 높다고 강조했다. 한국방송통신연구원(ETRI)에 따르면 700㎒ 대역 통신 할당 시 약 53조원의 국내총생산(GDP) 창출효과가 있는 반면 방송은 3조7000억원에 불과하다. 통신사는 일부 계층이 아닌 전 국민에게 원활한 모바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정부는 통신사에서 받는 수조원의 경매 대가를 국민 편익에 활용할 수 있다.

현재의 주파수 논란으로 인해 오랜 기간 표류한 재난망은 다시 표류할 위기에 처했다. 주파수가 확정되지 않으면 내년부터 시작될 시범사업부터 차질을 빚게 된다. 일부 이해집단의 여론몰이에 국민 안전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 출신 한 통신 전문가는 “LTE로 방송을 시청하는 등 사용자의 시청 패턴이 모바일 중심으로 바뀌어가고 있다”며 “대중의 이익을 생각하면 고품질 방송도 필요하지만 앞으로는 모바일 분야에 좋은 주파수를 할당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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