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0년대 후반 유럽 경제 환경은 급변했다. 기름진 옥토를 기반으로 중농주의를 대표했던 프랑스와 신대륙 발견, 무역을 바탕으로 중상주의를 대표했던 스페인에 대항해 산업혁명을 중심으로 성장한 영국이 세계 부국으로 성장했다. 대륙에서 외진 섬나라 영국이 유럽의 강대국을 제치고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과거 중세 산업구조를 혁신시키는 파괴적 기술과 사상이 있었다. 바로 1776년에 발간된 국부론이다.
분업 원칙과 이기심의 긍정 그리고 보이지 않는 손으로 대표되는 경제학적 사상이 대두된 것이다. 하지만 국부론의 진정한 핵심은 ‘재화의 확산’이다. 국가의 부는 ‘몇몇 귀족과 대상인이 보유한 금의 양이 아닌 사회 저변에 얼마나 재화가 확산돼 있는지’ 하는 것이다.
이 따분한 경제학적 고전모델의 핵심 논조에 대해 2014년 오늘을 사는 우리의 대답은 나름 긍정적인 듯하다. 산업적 효율화가 충분히 이뤄졌고 대량생산 체계가 완비된 시장경제 하에서 ‘재화의 확산’은 교환경제의 효율성을 기반으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효율성은 거시적 분업과 같아서 각 계층에 따른 차별적 경쟁 우위 중심의 생산체계를 가속화하고 궁극에는 생산자와 소비자를 뚜렷하게 양분하는 경제구조를 확립하게 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재화를 만들어내는 생산 주체들(Makers)을 중심으로 기술과 자본이 집중됐고 새로운 생산 주체들의 창의적 참여를 제약하는 거대한 장벽이 됐다. 제한된 생산주체들은 교환경제의 효율성을 다양성으로 확대하는 수준까지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다.
애덤 스미스의 단순한 재화의 확산만으로는 다양성을 설명하기 어렵다. 또 극단적 효율성을 가진 경제구조가 진화할 수 있는 유일한 출구는 다양성에 기반을 둔 창조 능력이라고 볼 때 몇몇 메이커들에 의해 이뤄지는 창조력은 매우 제한적인 것처럼 보인다. 더 많은 생산주체의 자발적 참여가 필요하며 이들이 만들어내는 창의적 아이디어는 즉각적으로 상품화되고, 유통돼 교환경제의 또 다른 축이 돼야 한다. 즉, 사회각층으로 단순한 재화의 확산을 넘어선 가치의 확산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생산주체의 창의력을 상품으로 쉽게 가치화할 수 있는 기술이 3D프린팅이다.
3D프린팅은 기존의 가치사슬을 붕괴시킬 정도로 매우 파괴적이면서도 단순하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이분법적 분류를 무력화시킨다는 점이다. 소비자는 자신이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나만의 상품을 실체화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생산은 자가화(自家化)되고 상상만이 거래될 수 있다. 결국 상상이 가치를 만들게 되고 단순한 재화의 확산을 넘어선 진정한 의미의 광범위한 ‘가치의 확산’이 이뤄진다. 3D프린팅은 분업에 의한 효율성 가치를 넘어선 다양성의 가치를 제공하며 누구나 새로운 생산자, 더 나아가 창조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정부의 3D프린팅 상상공간 확대와 체험 인구 확산 노력은 가까운 미래에 나타날 보편적 산업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새로운 국가의 부(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창조경제는 분명 이 시대에 어울리는 국부론인 듯하다. 이러한 새로운 국부론을 실현시킬 수 있는 중요한 전략적 수단이 3D프린팅이다. 이를 위한 사회적 기반을 구축하는 것은 국가의 부를 창출하기 위한 시작점이 될 것이다. 다수의 창의 메이커들을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사회 저변의 비생산인구조차 손쉽게 자신의 창의력을 상품화할 수 있도록 온·오프라인에서 창의공간을 확대해야 한다. 더 나아가 다양한 사회 계층을 위한 교육프로그램 강화 등의 노력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이것이 새로운 국부론의 서막이 될 것이며 재화의 확산이 가치의 확산으로 변모하는 시발점이 될 것이며 창조경제의 기반이 될 것이다.
윤영진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 yjyoon@sm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