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 서너 곳, 애플에 제품 공급 물밑작업 중
더딘 시장 개화와 가격 하락으로 위기에 내몰렸던 국내 사파이어 잉곳 업계가 시장 변화로 재기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애플에 사파이어 유리를 독점 공급해 오던 협력사가 파산 신청하면서 이에 따른 반사이익이 기대됨은 물론이고 중국 업체들이 적극적으로 사파이어 잉곳 제조기술 확보에 나서면서 국내 제품과 기술이 재조명받고 있기 때문이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엔씨사파이어·DK아즈텍 등 국내 주요 사파이어 잉곳 업체 서너 곳이 최근 애플에 제품을 공급하기 위한 물밑 작업을 벌이고 있거나 중국 기업과 제품 공급 협상을 벌이는 등 시장 활성화에 청신호가 켜지고 있다. 특히 일부 기업은 제품 스펙과 성능 테스트 결과를 보낸 것은 물론이고 애플과 구체적 가격 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동안 애플은 사파이어 잉곳을 대량 독점 공급받기 위해 미국 사파이어 성장로 장비 업체인 지티어드밴스트테크놀로지(GTAT)에 전략적으로 투자해 왔다. 애플은 이 회사에 애리조나 공장 설비 지원금으로 4억4000만달러를 선지급했다. 하지만 최근 GTAT가 법원에 파산보호 신청을 한 데 이어 애리조나 공장까지 폐쇄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경쟁 업체인 국내 사파이어 업체들에 반사이익이 돌아갈 것으로 예상됐다.
업계 한 관계자는 “GTAT는 성장로 장비를 전문적으로 만들던 회사로, 사실상 밥통 만드는 기술만 있었을 뿐 밥맛을 좋게 하는 요리사는 없었다”며 “품질 개선에 계속적으로 어려움을 호소했던 터라 이번 일은 이미 예견됐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앞으로 2~3년 내 GTAT가 애플에 대규모 사파이어 유리를 공급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면 품질이 검증된 국내 업체들에 기회가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 업체들의 사파이어폰 출시 경쟁도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 현지 사파이어 잉곳 품질이 국내 제품보다 많이 뒤처져 있기 때문이다. 중국 샤오미는 최근 국내 모 업체에 5만장 수준의 스마트폰용 사파이어 커버 조달을 의뢰했다. 아직은 소량이지만 차즘 확대될 것으로 전망됐다.
기술 확보를 위한 지분 투자 등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최근 8인치 대구경 사파이어 잉곳 개발에 성공한 엔씨사파이어는 중국 지자체 및 현지 업체들과 기술 이전 등을 활발히 검토하고 있다. 이달 내 최종 계약이 이뤄질 예정이다. DK아즈텍 역시 중국 업체들로부터 사파이어 잉곳뿐 아니라 성장로 장비의 주문 문의를 지속적으로 받고 있다.
또 사파이어 잉곳의 원재료인 산화알루미나 생산 업체가 국내에 세워지면서 후방 산업 생태계가 갖춰진 것도 국내 사파이어 잉곳 업계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은 애플보다 먼저 사파이어폰을 출시하려고 노력하면서 정부 차원에서도 전략적으로 지원하고 있다”며 “기술력에다 생산력까지 확보하고 있는 국내 업체들이 최대 협력 파트너사로 꼽히고 있어 이번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사파이어 잉곳은 알루미나에 높은 열을 가해 결정을 생성한 뒤 서서히 굳힌 원통형 기둥을 일컫는다. 잉곳을 가공해 원기둥으로 만들면 로드가 되고, 로드를 슬라이스로 자르면 웨이퍼가 된다. 주로 발광다이오드(LED) 원소재와 스마트폰 커버에 적용되고 있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