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부정과 내부 고발을 다룬 영화 ‘제보자’가 화제를 모은 가운데, 정부가 내부 고발자 신변 보호를 제약할 수 있는 규정 개정을 추진해 논란이 예상된다. 폐쇄적인 연구계 분위기 탓에 내부 고발이 어려운 현실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높다.
12일 미래창조과학부와 연구계에 따르면 미래부는 지난 6일 ‘국가연구개발사업 관리 등에 관한 규칙(공동관리규칙) 일부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규칙 13조에 ‘제보 내용이 허위인 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보한 제보자는 보호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단서 조항을 추가해 ‘의도적 허위 제보’의 경우 제보자 신변을 보호하지 않겠다는 것이 골자다.
공동관리규칙은 대통령령인 ‘국가연구개발사업 관리등에 관한 규정(공동관리규정)’의 하위 규칙인 미래부령으로, 공동관리규정 적용을 받는 국가 연구개발(R&D) 사업 전체를 포괄한다.
개정 취지는 의도적 허위 제보를 막겠다는 것이지만, 자칫 제보 자체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제보자의 허위 인지 여부를 입증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규정이 제대로 적용되려면 제보자가 ‘허위인 줄 알고도’ 제보했다는 사실이 명확해야 하지만 이를 입증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규정 개정을 추진하는 미래부도 별다른 대책이 없다.
미래부 관계자는 “악의적인 허위 제보까지 보호해줘야 되냐는 개정 수요가 있어 반영했다”며 “정부가 허위 여부를 판단해주는 역할은 없고, 연구기관이 직접 구성하는 조사위원회가 규정을 운용하면서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제보자 의도와 상관없이 제보 내용이 허위로 밝혀지면 ‘의도적 허위 제보’로 몰려 신변에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연구비 유용, 논문 표절 등 연구 부정 조사는 연구 기관이 직접 하기 때문에 규정을 악용해 기관에 불리한 제보를 ‘의도적 허위 제보’로 몰아붙일 수 있다.
연구 현장에서는 내부 고발 자체가 어려운 현실과 역행하는 조치라는 지적이 나온다. 연구계 한 관계자는 “연구계는 폐쇄적인 곳이라 내부 고발 자체가 적게 나오기 때문에 허위 제보 우려가 적다”며 “제보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인데 일부러 허위 제보를 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사제 관계로 엮여 있는 대학 연구실의 경우 내부 고발이 더 위축될 여지가 있다. 한 대학 연구실 종사자는 “대학 연구원은 끝까지 버텨서 교수가 되거나 다음 프로젝트로 넘어가는 게 목표”라며 “내부 고발을 하면 돌아오는 불이익이 너무 확실하기 때문에 제보는 거의 안하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이어 “내부 고발자 신변보호 범위를 좁힌다면 지금보다 더 폐쇄적인 분위기가 형성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