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바벨탑의 염원` 국가재난통신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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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성경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벨탑 이야기가 나온다. 사람들이 동쪽에서 이주해 오다가 신아르 지방에 머무르며, 하늘까지 닿는 높은 탑을 쌓아 신과의 동격을 추구했던 것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이들이 신의 화를 불러 바벨탑 건축이 좌절된다는 줄거리다. 이때 인간의 만용에 대해 신이 내린 조처가 바로 그들의 동일 언어를 이질화시켜 서로의 대화가 통하지 못하게 하는 벌을 주었다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하고많은 처벌 중에 신은 왜 인간의 언어를 다르게 하는 벌을 내렸을까? 동일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조직의 협력과 조정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공동 언어, 공동 통신이 꼭 필요했던 것이다. 인간의 염원인 사업, 그만큼 중요하고 시급했던 사업이 결국 상호통신이 안 됨에 따라 실패로 끝난 것이다.

세월호 사고 이후 국가재난통신망 구축과 관련해 많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2003년 대구 지하철 사고 이후 국가 재난사태 대응에 있어 유관 부처 간 공동 통신망 구축 필요성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해왔다. 바벨탑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 국가적 재난 대응에 있어 상호 간 협력과 신속한 공동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상호 공동통신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우리는 이처럼 중요한 국가재난통신망을 미처 구축하지 못한 상황에서 또다시 세월호 사고라는 큰 시련을 겪게 됐고, 여지없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마치 언어가 서로 달라져 바벨탑의 벽돌을 나르지도 못하고 자중지란에 빠졌던 고대인들처럼 우리는 가라앉는 세월호를 눈앞에서 바라보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실천(act)이 중요하다. 2003년 대구 지하철 사고 이후 10여년 동안 논의만 하고 실천이 없었던 정책이 국민 안전과 국가 역량 제고에 어떤 악 영향을 미쳤는지를 이번 세월호 사고가 방증하고 있다.

국가재난 통신망은 지금까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이슈가 제기되고 있는 것 같다. 기술 방식이 그 하나고, 운영방식이 두 번째다.

기술방식은 테트라(TETRA), 와이브로(WiBro), 롱텀에벌루션(LTE) 등 기술 채택에 있어 발생하는 논쟁이다. 물론 최근 영상기능과 빠른 전송 속도가 강조되고 있는 통신시장 현실에 따라 미래부도 700㎒의 공공안전 롱텀에벌루션(PS-LTE) 방식을 요청하고 정보화전략계획(ISP) 수립에 들어갔다.

이러한 정부 노력과 함께 국가재난통신망의 고유 특수성은 반드시 고려돼야 한다. 특히 재난통신망의 기본인 동보전송과 다자 동시통화 기능 등이 안정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국가재난의 악조건 속에서도 서비스 항상성이 담보되며 생존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기술이 우선시돼야 한다.

구축과 운영 방식은 우리가 좀 더 열린 사고를 갖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 국가재난망의 범위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가 문제될 수 있다. 국가재난망은 현재 안전행정부가 주도하는 범위를 넘어설 수 있음을 우선 지적하고 싶다. 세월호 사고 이후 국가재난의 범위를 자연재해 및 대형사고로 인한 국민의 보호에만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우리는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며, 국제사회의 주류 국가로서 책임과 역할이 점차 커진다는 점에서 국제테러 조직의 위협으로부터도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상황까지 고려한 핵심통신망 구축이 요구된다.

현재 검토 중인 국가재난통신망의 범위는 특정 부처 수준이 아닌 범정부 차원의 종합 국가통신망 수준으로 격상돼야 할 것이다. 평상시 국가원수인 대통령 경호와 국방·치안 및 소방·방재 통신 그리고 전시사변 등 국가 비상시 국가 기능유지를 위한 국가지도 통신망 등이 모두 연계 될 수 있도록 국가핵심통신망 구축이 필요한 상황이다.

더욱이 영원한 동맹과 적대관계가 존재하지 않고 국익에 따라 관계가 뒤바뀌는 국제 정세 속에서 국가 상호 간의 도·감청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얼마 전 독일 메르켈 수상이 자국 정보보호를 위해 값비싼 비화전화 통신망을 사용하기로 한 사례에서도 이 같은 문제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현대사회에 들어 국가 핵심통신망의 안전성과 보안성은 더욱 중요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가 핵심통신망의 운영이 매끄럽게 통합돼 있지 못하다는 점은 걱정거리다. 일례로 전시에 대비한 국방부 국가지도통신망(민간 위탁 및 민간망 가입), 대통령 경호·방호를 위한 경호망(민간망 가입), 경찰망, 소방방제망(민간 위탁) 등 주요 긴급 통신망이 여러 민간 통신기업에 위탁·운영되고 있다. 심지어 비상시 국가통치를 위한 대통령 전용망까지도 민간에 위탁·운영되고 있는 현실이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국가재난통신망도 운영비용의 문제로 민간통신 사업자에게 위탁 운영될 공산이 크다.

우리나라 주요 통신사들의 지분구조를 보면 해외투자 지분이 높고(한-미, 한-EU FTA 체결에 따라 외국인 투자 지분이 100%까지 가능해짐), 해외 투자자들은 통신사들이 국가긴급망을 유지관리 하기 보다는 이익극대화를 위해 주가가치 상승에 더 많은 경영자원을 할당할 것을 요구한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긴급통신망에 대한 통신사의 기술투자와 시설 확대라는 애국심을 요구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또 국가긴급통신망은 비밀성과 보안성이 요구되는 통신망이라는 점에서 해외지분이 높은 민간 사업자에게 위탁 운영을 하는 것은 다시 한 번 고민이 요구되는 부문이다.

통신망의 공공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통신망은 신체 신경망과 같아 국가 긴급상황에서 정확하고 신속한 의사결정 및 빠른 집행을 위해 꼭 필요한 국가 핵심 인프라다. 이처럼 공공성이 강조되는 국가핵심 기능 유지를 위한 주요통신망은 국가재정이 소요되는 한이 있더라도 정부에서 자가망 구축 운영 등의 공공성 확보를 위한 고민이 더욱 필요하다.

미국은 2012년부터 국가공공안전광대역망(NPSBN) 구축을 위해 통신정보관리청(NTIA) 아래 독립 기관으로 응급대응통신청(FirstNet: First Responder Network Authority)을 신설했다. 응급대응통신청은 연방, 주정부, 지역 공공안전 기관, 미국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 연방통신위원회(FCC) 및 공공안전자문위원회와 협의해 국가공공안전광대역망의 설계, 구축, 배치, 운용에 필요한 모든 업무를 맡고 있다.

미국 응급대응통신청(FirstNet) 설치·운영사례는 우리나라의 향후 국가재난통신망 구축 논의에 있어 큰 시사점이 될 수 있으며, 재난 통신망의 범위를 확대한 국가핵심통신망 구축 운영을 위한 방안으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분단 국가라는 우리나라 특수성과, 국제테러 위협 증대라는 여러 변수를 고려한 종합적인 국가재난 및 긴급 통신망 구축이 필요한 시점임을 한 번 더 강조한다. 세월호 사고 이후 재논의 되고 있는 국가재난통신망 구축사업이 국가긴급 상황을 모두 고려한, 운영의 공공성이 확보될 수 있는 한 차원 높은 국가긴급통신망으로 구축되기를 바란다.

김동수 전 정보통신부 차관 0755kd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