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멘스는 지난 2년간 한국 기업과 11조원 규모 수주 사업을 공동으로 수행했다. 조선과 엔지니어링 기업이 해외에서 수주한 발전소, 화학 컴플렉스(화학단지)사업 분야에 지멘스의 발전기 터빈, 공정 설비, 자동화 솔루션 등을 공급했다. 국내 기업과 지멘스 협력에 첨병 역할을 하고 있는 게 한국지멘스다.
김종갑 한국지멘스 회장은 “한국 시장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한국 지멘스 위상도 달라졌다”고 말했다. 이어 “지멘스를 매개로 한국 기업과 협력이 잦아지면서 문화·기술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다양한 교류가 일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표적 예가 지난해 출범한 발전 EPC 전문기업 ‘지멘스에너지솔루션즈’다. 지멘스는 이를 한국에 설립해 해외에 동반 진출하는 데 필요한 의사결정 속도를 높였다. 김 회장 말을 빌리면 일방적 관계가 아닌 상호 협력이 확실히 일어나는 윈윈 케이스다.
김 회장은 화력발전, 신재생 분야에서 협력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2017년까지 국내 가스 복합발전 수요가 두 배 이상 늘어나고 해상풍력 사업이 추진될 것”이라며 “가스터빈, 해상풍력에서 세계 정상권 기술력을 보유한 지멘스가 한국에서 사업 기회를 얻으면서 부품 구매 등 한국 기업과 전방위적 협력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이슈인 ‘인더스트리 4.0’ 관련해서는 한국도 경쟁력이 충분하다고 강조하면서도 소프트웨어 인력 양성은 시급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인더스트리 4.0은 독일 정부가 추진하는 제조업 성장 전략이다. 사물인터넷을 통해 생산기기와 생산품 간 소통 체계를 구축하고 생산과정을 최적화하는 작업으로 세계 각국이 역량 강화에 힘쓰고 있다.
김 회장은 “미국과 독일이 선도적 지위를 차지하지만 한국도 강점인 속도, 협업 능력으로 충분히 간극을 좁힐 수 있다”며 “소프트웨어 전문인력 양성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제조업 혁신은 결국 시뮬레이션을 통한 가상현실 등 융합이 필요해 소프트웨어 기술이 동시에 상승해야 한다는 것이 김 회장 지론이다. 정부 제조혁신위원회의 위원으로 참여하면서 순수·응용 소프트웨어 인력을 포함한 이공계 인력 양성을 강조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김 회장은 “제조업 혁신은 디자인과 엔지니어링 등 다양한 분야 기술과 인력이 융합되고 새로운 개념이 파생되는 복잡한 개념”이라며 “제조업 혁신이 제대로 이뤄지면 이것이 바로 정부가 추진하는 창조경제를 실현하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지멘스뿐 아니라 모든 외국계 기업과 국내 산업계가 상생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지적도 잊지 않았다. 국민과 금융기관의 부정적 인식, 갑작스런 정책 변화 등이 외국 기업이 토로하는 장애물로써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 김 회장 설명이다. 그는 “한국지멘스 전체 사업 영역 가운데 한국 기업과 경쟁이 일어나는 분야는 5%도 안 된다”며 “문화적 융합으로 외국계 기업의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1975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2006년 산업자원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을 지냈다. 하이닉스반도체(현 SK하이닉스) 사장을 거쳐 2011년 공개채용을 통해 한국지멘스 사상 첫 한국인 회장에 선임됐다.
최호기자 snoop@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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