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게임 종주국’으로 군림해온 한국의 위상이 거센 중국 바람에 휘청거린다. 기술력이 상향 평준화돼 격차가 거의 없어진 가운데 중국 현지 텃밭에서 성장한 기업이 거대 자본력을 무기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 공격적으로 투자한다. 부정적인 사회 인식과 정부 규제의 이중고 속에 놓인 국내 기업과 대조적이다. 이제 중국발 태풍의 국내 게임 시장 잠식은 시간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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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격차’ ‘게임 한류’는 옛말

“한국은 지금까지 쌓아온 개발 노하우로 버티고 있다. 기술력도 앞서 있었기에 버티는 것이지만 몇 년이나 지속할지 의문이다. 한국과 중국의 온라인게임 개발력 격차는 크지 않다.”

중국 ‘블레이드 앤 소울’ 개발·서비스를 총괄한 배재현 엔씨소프트 부사장은 중국 온라인게임 개발력을 이렇게 평가했다. 100~200명 인력으로 대형 온라인롤플레잉게임(MMORPG)을 만드는 우리나라에 비해 중국은 400~500명 인해전술로 격차를 빠르게 좁혔다는 설명이다. 그만큼 우수 인재도 많을 수밖에 없다.

중국이 풍부한 인력으로 게임 산업을 키우며 기술력을 쌓는 동안 국내 시장은 성장이 더뎌지면서 한계를 맞았다. 하지만 중국이 추격해오는 속도에 비해 위기감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그만큼 혁신을 위한 노력도 느슨했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이 지난 6월 발간한 ‘미래성장동력 창출을 위한 ICT R&D 혁신체계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게임산업 내부 혁신활동은 전통 콘텐츠 분야인 방송을 비롯해 성장 답보상태인 이러닝·전자출판 분야와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특히 해외와 비교하면 혁신 수준이 미미했다.

위정현 콘텐츠경영연구소장(중앙대 경영학과 교수)은 “중국 기업이 얼마나 빠르게 성장하는지, 국내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대부분의 기업이 체감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또 “2000년대 중후반 한국 온라인게임 시장은 빠른 성장을 거듭해 세계 게임 산업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지만 이미 당시 중국은 한국보다 온라인게임 경쟁력이 앞선 것으로 평가했다”고 강조했다.

콘텐츠경영연구소가 2008년 진행한 ‘한·중 온라인게임사의 중국 시장에 대한 경쟁력 비교분석’ 조사에 따르면 당시 중국 게임사들은 개발력을 제외한 기획력, 마케팅, 운영, 경영조직 부문에 걸쳐 한국보다 경쟁력이 높다고 답변했다. 유일하게 개발력만 한국 기업이 우세하다고 평가했지만 3개월 앞선 수준에 불과하다. 종합적으로 국내 기업은 ‘한국이 1년 1개월 앞섰다’고 답했고 중국 기업은 ‘중국이 1년 앞섰다’고 답해 상반된 시각을 보였다.

기존에 중국에서 큰 성과를 낸 한국 온라인게임들의 성적도 예전 같지 않다. 중국 PC방 집계사이트 바차이나(BARCHINA) 자료에 따르면 2012년 12월 20일 기준으로 점유율 1·2위는 한국게임 ‘크로스파이어’와 ‘던전앤파이터’였다. 총 49% 점유율로 현지 PC방 트래픽의 절반을 한국 게임이 차지한 셈이다. 약 2년 뒤인 8월 27일 현재 1위는 ‘리그오브레전드’로 바뀌었다. 크로스파이어가 26.59% 점유율로 1위였던 반면 리그오브레전드는 35.62%로 약 11%포인트 높다. 현지에서 뜨거운 인기를 얻고 있음을 감안하면 향후 성장세는 더 가파를 수 있다. 크로스파이어는 2위로 내려앉았고 던전앤파이터는 점유율이 약 15% 포인트 가량 줄어든 7.87%로 3위다.

온라인게임 상위 10위 중 텐센트가 서비스하는 게임은 2012년 7개에서 현재 8개로 늘었다. 중국 현지 퍼블리셔인 텐센트는 리그오브레전드를 개발한 라이엇게임즈 지분 90%를 2억3100만달러(약 2500억원)에 인수했다. 막강한 자본력을 이용해 거대한 중국 온라인게임 시장에서 자사 개발작으로 최고 자리에 오른 셈이다.

이정준 스마일게이트홀딩스 글로벌사업총괄 부사장은 “케이팝은 대표적인 한류 문화지만 게임은 한국 문화에 관심없는 사람도 게임 자체의 재미 때문에 이용하므로 한류 열풍과 거리가 있다”며 “어느 국가든 한류가 아닌 게임 자체의 재미로 승부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게임산업 포식자 된 텐센트

중국 게임산업의 성장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는 텐센트다. 이 회사는 크로스파이어와 던전앤파이터를 중국에 서비스해 현지 온라인게임 열풍을 주도했다. 한국 게임을 다수 서비스하며 벌어들인 수익으로 인터넷,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전자상거래 등 다양한 분야에 공격적으로 투자했다.

중국의 대표 IT기업을 넘어 세계 IT시장 장악을 시도하는 거대 공룡으로 변신했다. 한국 게임을 발판으로 성장한 텐센트는 아이러니하게도 국내 게임산업을 위협하는 존재이자 중국 진출에 없어서는 안 될 유력한 파트너가 됐다.

커지는 스마트폰 게임 시장에서 한국 개발사의 경쟁력을 간파한 텐센트는 일찌감치 카카오에 지분을 투자해 국내 소셜게임 시장의 성장 과정을 긴밀히 들여다봤다. 핵심 개발사로 부상한 넷마블에는 5300억원이라는 거액을 투입했다. 주요 개발사이자 퍼블리셔로 성장한 네시삼십삼분에도 지분을 투자할 것이라는 예측이 끊이지 않는다.

온라인게임에서 기술력을 쌓으며 격차를 좁힌 중국은 한국 스마트폰 게임 시장을 점령할 준비를 마쳤다. 웹게임을 제외하면 온라인게임 시장에서 존재감이 없던 중국 게임이 국내 모바일게임 매출 순위 30위권에 진입하며 개발력을 과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넷마블의 ‘드래곤가드’(11위), 넥슨 ‘삼검호’(23위)를 비롯해 중국 게임사 추콩의 ‘미검’(22위)과 4399코리아의 ‘아우라’(29)는 중국 게임사의 기획력과 개발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조재유 넥슨 모바일사업실장은 “게임성과 품질을 모두 갖춘 수준 높은 작품이 중국에서 상당히 많이 개발되고 있다”며 “단점으로 지적돼온 중국 게임 특유의 분위기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고 전했다.

권준모 네시삼십삼분 의장은 “한국과 중국의 게임 기술력 차이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만 한국 게임 특유의 독특한 아이디어나 신선한 재미는 아직 중국이 따라오지 못하는 경쟁력”이라며 “창의력 높은 게임으로 승부를 낼 수 있도록 인력 육성, 정책 지원 등 다양한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