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후핵연료, 해법을 찾자]<2>기술 개발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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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지난해 말 사용후핵연료 처리나 처분에 관한 관리방안을 공론화위원회에 위임했다. 원점에서 사용후핵연료 관리 방안을 검토한다는 취지는 좋았지만 그간 추진하던 모든 정책이 백지화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정책 결정도 1년 넘게 지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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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정책 방안과 별도 기술 개발이 이제 걸음마 수준이라는 점이다. 그나마 실험실 수준으로 진행해 왔던 사용후핵연료 관리 기술의 연구 개발도 방향성을 잃고 표류 중이다. 기술 개발에 착수한 지는 20년 가까이 됐지만 뚜렷한 성과도 없다. 관리 정책이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수많은 핵연료 처분 방식을 일일이 대응해 개발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정작 처분 방식이 결정돼도 이를 실행할 기술이 없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반면 해외 원전 보유 국가는 원전 운영 시작과 함께 처분 기술 확보에 착수했다. 그럼에도 이들 국가는 지하 처분연구시설에서 안전 성능을 실증한 후 부지 특성평가, 설계, 건설 인허가까지 50여 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용후핵연료 처분에 있어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용후핵연료 처분 기술개발에 착수한 것은 1997년. 최초 원전 가동 후 20년이 지나서야 시작됐다. 이마저도 지금은 대부분 중단되거나 기반 연구 수준에 그쳤다.

◇기술, 방향을 잃다

국내는 원전 보유 규모 5위 국가이지만 사용후핵연료 관리기술을 확보하지 못한 것은 정부 정책 실패 때문이다. 원자력 업계에서도 사용후핵연료 관리 기술 공백기는 지난 2007년 과학기술부가 기술개발 업무를 원자력연구원에서 원자력환경공단으로 이관하면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경주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이 착공하면서 사용후핵연료 관리기술이 뒤로 밀렸다는 것이다.

대신 10년 째 연구개발 중이던 원자력연구원은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한 뒤에 남는 연료 처분에 관한 기술 개발로 한정했다. 한·미 원자력 협정에 따라 재처리를 제한하고 있으니 결국 장기 처분 기술 개발 자체가 중단됐다. 연구원에서는 자체 예산을 들여 3~5㎞ 심부 지층 처분기술 개발에 착수했으나 개념 연구와 시뮬레이션 정도에 머물렀다.

사용후핵연료 처분 방식으로 한국에서 가장 많이 고려되는 방안은 ‘심지층 처분’이다. 지하 500~1000m 깊이에 있는 암반층에 격리 보관해 사람과 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사용후핵연료를 처분 용기에 넣고 지하 3~5㎞에 있는 암반층에 구멍을 뚫어 처분하는 초장심도 처분 방식도 검토되지만 심지층 처분도 연구 수준에 그치고 있는 상태다. 기술개발이 더 필요한 우주처분이나 해양처분, 빙하처분 등은 검토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공론화위원회 전문가 검토그룹이 제출한 의견서에서도 “장기 관리 방안으로 영구처분, 재처리, 위탁 재처리 등을 고려할 수 있으나 어떤 방안도 이용 가능한 상황이 아니다”고 평가했다. 장기 관리방안 실현을 위한 기술개발 현황도 “장기 관리 방안 각각에 대한 연구조차 초기 단계에 있음을 감안해 답변을 유보한다”며 영구 처분이나 재처리, 장기 중간저장 등 모든 장기 처리방안을 동시에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간 저장이나 재처리 기술도 ‘전무’

공론화 이전 정부에서 추진하던 중간 저장 시설도 관련 기술은 전혀 확보되지 않았다. 부지 선정에만 몰두한 결과다. 물에 넣어 식히며 임시저장하는 습식 방식이 뒤로 밀리고 1990년대에 들어서며 콘크리트 구조물 내에 저장하는 건식 방식이 주를 이루지만 해법은 찾지 못했다. 특히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건식저장 방식을 더 선호하는 상황이다.

2000년대 한국수력원자력을 중심으로 저장용기와 저장시설에 대한 기반연구 정도만 이뤄졌다. 원자력환경공단과 원자력연구원에서는 2009년부터 사용후핵연료 운반저장 겸용 금속용기, 콘크리트 개발 용기에만 역량을 집중하고 있을 뿐이다. 선진국에서 저장 용기보다 사용후핵연료 자체에 대한 건전성 연구를 선행한 것과 다르다.

게다가 국내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은 중수로 방식인 월성원전이 유일하며, 이마저도 습식과 병행 중이다. 한수원에서는 국내 원전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경수로 방식에 적용하기 위해 ‘맥스터(MACSTOR)’라는 콘크리트 사일로 형태의 건식 저장 기술을 2018년 목표로 개발 중이다. 하지만 사용후핵연료 건전성 평가기술, 핵심인 중성자 흡수재와 차폐재 개발은 기획단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술과 인력, 턱없이 부족

원자력기술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사용후핵연료 처분기술은 선진국에 비해 60~70% 수준에 머무른다. 장기 관리방안의 핵심인 지하처분연구시설(URL)은 30%에 불과하다. 선진국 대부분이 원전 가동 시작과 함께 처분기술을 개발한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출발이 늦었기 때문이다.

물론 과감한 투자로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지만 중간저장 부지 선정에만 19년이라는 시간을 흘려보냈다. 사용후핵연료 건전성 평가나 처분기술 등 핵심은 제외하고 운반저장겸용 용기 개발에만 집중했다. 부지 선정이 뜻대로 되지 않으니 원전 호기 내 이동으로 급한 불만 끈다는 구상에 따른 것이다.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 구성을 갑작스레 연기하겠다고 밝힌 2009년에 관련 국산화 연구가 시작된 점을 되짚어 보면 알 수 있다. 미국산 쇠고기 파동으로 홍역을 앓던 당시 정부가 공론화 대신 임시방편으로 내놓은 해법 때문에 사용후핵연료 처분시한을 5년이나 날려 보낸 것이다.

기술인력이 부족한 것은 당연하다. 정부 투자가 없으니 전문 인력 양성은 요원한 상황이다. 국내를 통틀어도 50명 남짓이다. 원자력연구원에 28명과 임시직 석·박사 일부, 원자력환경공단 10명, 몇 안 되는 대학 교수까지 더해야 그렇다는 얘기다. 정부 한 관계자는 “사용후핵연료 처분 정책 결정을 위한 선택지가 기술 부족으로 제한될 수 있다”며 “정책과 기술개발이 균형을 맞춰 진행돼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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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선기자 yuda@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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