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가 늘어나고 사회가 발달하면서 시작된 고민이 있다. 바로 쓰레기다. 쓰레기 처리가 문제가 되는 건 분해되는 양보다 쌓이는 게 더 많기 때문이다. 한 곳에 모아 버리다가 매립을 했지만 더 이상 공간이 없다. 최근 쓰레기 해양 투기가 금지되면서 버릴 곳마저 줄었다. 불로 태우기도 하지만 가스와 재가 남는다. 물론 완전 분해가 되는 쓰레기도 있지만 대부분 오랜 시간이 걸린다. 분해 시간이 길수록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1978년 고리원전 1호기가 첫 가동된 지 37년이 흘렀다. 당시 원전 설계수명은 30년. 10년 연장했어도 수명은 3년 남짓 남았다. 원전 안에는 사용하고 빼낸 핵연료가 가득하다. 마냥 원전 내에 넣어둘 수도 없다. 말 그대로 ‘임시 저장’이기 때문이다. 원전 설계 수명 이후 보관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다. 원전을 가동에 따른 연료 처리 문제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바로 ‘사용후핵연료’다.
◇ 사용후핵연료 ‘발등에 불’
사용후핵연료는 일반 쓰레기와 달리 단순 매립하거나 태울 수 없다. 땅 속 깊은 곳에 묻어도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사용후핵연료 방사능이 천연 우라늄 수준으로 떨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30만년 정도다. 적어도 인류가 생존하는 동안에는 생활 공간과 완벽히 분리돼 있어야 한다. 그저 쌓아두면 될 것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정부는 사용 후 핵연료 처분 방식을 결정하기 위해 공론화를 택했다. 국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것이다.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처리장 부지 선정 과정에서 발생한 민란 수준의 2003년 부안사태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속내다.
정부가 시간이 촉박한 가운데서도 신중을 기하는 이유는 사용 후 핵연료의 위험성 때문이다. 일본 후쿠오카 원전 사고에서 보듯이 대가는 너무 컸다. 연료로 사용이 끝난 후에도 장기간 에너지를 뿜어내는 사용 후 핵연료를 단순히 폐기물로 치부하기엔 무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세계 원전이 핵연료에 4% 남짓 포함된 우라늄235만을 핵분열 할 수 있어 자원으로서 가치를 재평가 받고 있다. 나머지 96%의 우라늄을 핵분열시킬 수만 있다면 산술적으로만 따져도 지금보다 적어도 20배 이상 사용기간이 늘어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연료 사용기간이 5년인 점을 감안하면 한번 투입으로 100년 이상 쓸 수 있다는 얘기다. 원전 수명이 다할 때까지 연료를 한 번도 교체하지 않아도 되는 셈이다. 사용 후 핵연료를 자원으로 재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다.
◇처분이냐, 재활용이냐
재활용 방법은 재처리다. ‘파이로 프로세싱’ 기술이다. 이 기술은 500~600℃ 액체 상태 전해질에 사용 후 핵연료를 넣고 전기를 연결해 사용 후 핵연료에 포함된 유용한 원소를 분리해 낸다. 추출한 우라늄과 플루토늄 혼합물을 개발 중인 제4세대 원자로 소듐냉각고속로(SFR) 연료로 재사용하면 기존 독성과 반감기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독성은 1000분의 1, 고준위 폐기물 처리 공간도 100분의 1로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정작 문제는 파이로 프로세싱을 통해 재활용한 사용 후 핵연료는 우리나라에서 운영 중인 경수로나 중수로 원전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연료로 사용하기에 앞서 소듐냉각고속로를 개발해야 한다. 상용화되기 위해 필요한 시간도 최소 20년은 넘어야 한다. 재처리 하는 과정에서 열과 독성 물질도 더 많이 방출돼 위험하다. 재처리 시설 건설과 유지 비용이 높아 경제적 효과도 떨어지는 것으로 원자력 업계는 분석했다.
게다가 국제 사회에서는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를 핵무기 개발과 직결하기 때문에 외교적 관점에서도 재활용은 사실 적합한 방안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한·미 원자력협정으로 더욱 어렵다. 핵 보유국이 아닌 국가 대부분이 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 과정 없이 바로 영구 폐기하는 이유다.
세계 31개 원전 보유국 중에서 6개국만 재처리를 한다. 프랑스와 영국은 다른 나라의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를 위탁받았고 영국은 위탁 의뢰가 없어 재처리를 중단한 상황이다.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국가에서는 일본이 유일하게 재처리 한다. 우리나라가 외교적으로 풀어 재처리가 가능해져도 영국의 경우처럼 실효는 매우 낮다. 물론 위탁은 가능하다. 따라서 사용 후 핵연료는 현 상황에서 일단 폐기물로 보는 게 맞다. 문자 그대로 원자력발전소에서 연료로 사용하고 빼낸 우라늄 연료 다발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핵연료 처분 핵심 물질, 우라늄 찌꺼기
우라늄은 보통 한 번 연료로 투입되면 5년 정도 쓴다. 석탄과 달리 연료 수명이 다했다고 불이 꺼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천연 우라늄 상태일 때보다 강한 방사선과 높은 열을 내뿜는 위험 물질로 성질이 바뀐다. 원자로에서 인출된 사용 후 핵연료는 그 자체로 핵분열 반응을 하지 못한다. 일단 핵폭발 염려는 없다.
문제는 핵분열 반응 부산물이 붕괴하면서 많은 열과 방사선을 내는 것이다.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은 상황에서 노출되거나 연료 손상으로 방사성 물질이 누출되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아예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바뀌는 것이다. 경주 방폐장에 저장되는 장갑이나 마스크와 같은 저준위 방사성 폐기물과 차원이 다르다.
사용 후 핵연료는 우라늄 찌꺼기가 93.4%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5.2%는 핵분열 생성물이며 플루토늄 1.2%, 초우라늄원소 0.2%가 극소량 포함돼 있다. 원자로에서 인출된 후 방사능과 열이 급격히 떨어지지만 방사능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반감기가 200년이 넘는다. 원전에서 인출한 뒤에도 오랜 기간 특수 차폐용기에 담겨 엄중하게 관리돼야 하는 이유다. 인출 직후 습식 저장조에서 6-10년 정도 열을 식히고 건식 저장시설로 옮기거나 습식저장조에 계속 두는 방법도 있다.
◇사용 후 핵연료 처분 방안 시급
법에도 사용 후 핵연료는 폐기물로 규정돼 있다. 원자력안전법 제2조 18항에 따르면 사용 후 핵연료는 방사성폐기물로 폐기 대상 물질이라고 밝히고 있다. 14항에서는 ‘사용 후 핵연료 처리’란 원자로 연료로 사용된 핵연료 물질이나 그 밖의 방법으로 원자핵분열을 시킨 핵연료 물질로 정의한다. 연구 또는 시험을 목적으로 취급하거나 물리적·화학적 방법으로 처리해 핵연료 물질과 그 밖의 물질로 분리하는 것이라고도 명시하고 있다.
결국 현행법상 사용 후 핵연료는 폐기물에 해당하지만 처리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못을 박지는 않았다. 하지만 재처리를 통해 다시 자원화한다는 것에 대한 규정도 없다. 사용 후 핵연료가 미래에는 자원일 수 있지만 이에 앞서 포화 상태를 우려해 일단 저장을 해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자원으로서의 가치가 없다는 게 아니라 우선 순위에서 밀리는 것이다.
이에 중장기 관리방안은 논외로 하더라도 단기적으로는 습식이나 건식 저장소를 하루 빨리 건설하는 게 최선이라고 원전 이해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물론 공론화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원자력 산업계 한 관계자는 “사용 후 핵연료는 하루 빨리 처리해야 한다는 것과 재처리보다는 저장이 국내에 적합하다는 것은 반론이 없을 것”이라며 “시행 가능한 목표가 명확하면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고 말했다.
<원전별 사용후핵연료 현황(2014년 3월 기준)>
유창선기자 yuda@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