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이 풍력 사업을 축소하거나 투자를 유보하는 등 속도를 조절하면서 파장이 부품 제조 협력사까지 미치고 있다. 대기업만 바라보고 투자에 나선 중소기업이 판로를 잃는 등 경영난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국내 한 대기업은 서남해 2.5GW 해상풍력사업 참여를 돌연 포기했다. 현재 제조 중인 풍력발전기 검증이 끝나지 않아 사업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다. 이 기업이 사업 참여를 포기하자 주요 부품 공급사는 비상이 걸렸다. 블레이드(날개)를 공급하기로 한 중소기업은 해외에서 수십억원의 비용을 들여 주형을 구입했지만 무용지물이 됐다. 사업에 기대를 걸고 투자를 단행했지만 재정 부담만 커지게 됐다.
또 다른 부품 공급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대기업이 해상풍력사업을 필두로 해외 영업에 나설 때 부품을 공급하기로 했지만 사업 유보로 앞날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협력사 관계자는 “풍력 부품제조기업 가운데 일부는 해외 기업과 공급 계약을 체결해 실적을 유지하지만 그렇지 않은 기업은 심각한 경영난에 직면했다”면서 “대기업이 풍력 사업을 점차 축소하는 움직임마저 보여 다수 협력사가 실적에 큰 부담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업계는 풍력산업 전반에 불어 닥친 위기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에서 추진하는 육·해상 풍력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으면서 대기업이 풍력 사업에서 추진동력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국내 기업 실적을 살펴보면 현대중공업 44기, 삼성중공업 36기, 유니슨 29기, 두산중공업 25기, 효성이 9기, 대우조선해양 2기에 불과하다. 육·해상을 가리지 않고 풍력발전 수요 확대에 어려움을 겪었다. 통상 연간 30기 이상을 수주해야 손익을 맞추는 것으로 업계는 추정한다.
당장 안정적 수요가 발생하기 어려운 것은 더 큰 문제다. 육상풍력사업은 총 1.8GW 규모 사업이 인허가 단계에 묶여 있다. 최근 환경부와 산림청이 관련 규제를 해소에 나섰지만 사업이 불가능한 1등급지에서 진행하는 사업이 대다수여서 수요 증가로 이어질지 미지수다.
해상 풍력도 상황은 유사하다. 정부가 국내 풍력기업 레퍼런스(실적) 확보를 위해 계획한 서남해 풍력 사업만해도 당초 5, 6개 기업이 참여가 예상됐지만 2개 기업만이 참여를 최종 밝혔다. 대기업이 업황 부진으로 풍력사업 속도조절에 들어가면서 예상보다 미진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반면 한국풍력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풍력발전기 부품 제조사의 국산화율은 최근 지속 상승했다. 타워 100%, 블레이드 40%, 나셀컴포넌트 20% 수준에 근접했다. 업계 관계자는 “풍력산업 활성화를 위해서는 정부, 대기업, 중소기업 협력이 필요하지만 모든 것이 엇박자”라며 “대기업은 손실이 지속될수록 관련 사업을 축소하고 이로 인해 기술 개발이 늦어지면서 협력사도 성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최호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