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무청이 게임 중독을 공익근무요원의 소집 해제 질병 기준에 넣었다. 정부가 인정한 정식 질병이 아닌 게임 중독을 마약이나 알코올과 같이 취급해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더욱이 게임 중독을 판정하는 공식 기관도 없어 사회 일부 계층의 군 복무 회피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병무청은 최근 개정한 ‘사회복무요원 복무부적합자 소집해제 처리규정’의 3조 5항에 ‘알코올, 마약, 게임 중독 등으로 6개월 이상의 치료(교정)를 요해 정상적인 직무 수행이 곤란한 사람’을 심사 기준에 넣었다. 다시 말해 공익근무요원이 복무 중에 게임에 중독되면 소집해제시킨다는 뜻이다.
문제는 게임 중독이 아직은 통계청과 복지부에서 정식 질병코드를 받은 항목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질병코드는 통계청이 질병을 분류하고 복지부가 관리하는 표준체계다. 해외 선진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정신의학협회가 분류한 이상 행동의 진단·분류 체계 ‘DSM-5’에서도 인터넷게임 중독은 연구가 더 필요한 사안으로 본다.
병무청은 게임 중독이 의학계에서 명확한 기준이 없는데도 군 복무 의무를 중간에 그만두는 기준 중 하나로 삼았다. 병무청 측은 “지금까지 게임중독으로 소집해제 판정을 받은 사람은 없다”며 “게임을 지나치게 즐겨 정상적인 복무가 불가능한 사람을 대상으로 소집해제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관찰, 지역 청소년상담센터 등에서 실시한 상담과 심리검사 등의 결과를 바탕으로 부적합자 여부를 판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넷·게임중독 진단 기준을 연구해온 건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하지현 교수는 게임중독 용어를 규정에서 삭제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또 공익근무요원을 관리·감독하는 공공기관의 체계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하 교수는 “게임중독은 정신질환이 아닌 행위의 문제이므로 그 자체가 질병 기준은 될 수 없다”며 “군 복무 중 정신질환으로 제대하는 수준은 입원이 필요한 정신분열증, 심각한 조울증, 뚜렷한 자살 행태와 입원 기록이 있는 사람 정도”라고 제시했다.
하 교수는 병무청 규정이 공익근무요원의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데서 비롯됐다는 의문을 던졌다. 그는 “지나친 게임 이용으로 근무 태만이 발생하면 업무 현장에서 다른 동료가 피해를 보는 등 해당 부서에서 문제가 생기다보니 결국 책임 회피를 위해 게임중독을 포함한 것 같다”며 “규정에서 게임중독을 삭제하고 대신 두 배수 근무 등 관리·감독을 더 엄격히 하는 방안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게임 업계는 우려를 표명했다. 게임인연대(대표 김정태) 측은 “게임중독에 대한 판정 기준도 없이 이 규정이 어떤 경위로 만들어졌는지 의문”이라며 “게임중독이 규정 요건에 어떻게 포함됐는지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고 공식 입장을 내놨다.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