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계의 불만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박근혜정부가 이전 정부와 달리 과학기술을 중시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오히려 과학 정책이 후퇴하고 있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거꾸로 가는 과학 정책이라는 비판까지 등장했다.
연구자들이 체감하는 정부 과학기술 투자 증가속도는 이미 둔화되고 있으며, 과학 교육까지 줄이려는 움직임에는 집단 반발 움직임까지 나타났다. 정부가 과학기술계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정책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체감 R&D 투자 위축
정부 R&D 예산은 소폭이지만 꾸준히 증가해왔다. 하지만 연구자들이 체감하는 투자는 이미 감소하고 있다. 우선 증가율이 둔화되면서 올해 물가 상승률을 조금 상회하는 수준에 그쳤고, 내년에는 물가 상승률보다 밑돌수도 있다. 금액은 증가하지만 사실상 증가 효과가 없는 것과 다름없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더욱 심각하다. 정부 R&D 투자액 구조를 보면 우주와 과학벨트에 뭉치 예산이 투입된다. 규모도 이전보다 크게 늘었다. 다른 분야 연구자들은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
정부의 R&D 예산 발표형태도 변했다. 이전까지는 R&D 예산을 발표할 때 전년 대비 증가율이 핵심이었다. 하지만 현 정부에서는 전체 예산액에 비중을 두고 발표한다. 증가율 감소를 가리기 위한 방편인 셈이다.
◇과학 연구 위축 우려
R&D 예산 증가 둔화로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풀뿌리 기초연구 축소’다. 뭉치 예산이 투입되는 우주와 과학벨트를 제외한 분야는 상대적으로 예산이 위축되는데 특히 기초연구 분야에서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이미 지난해부터 기초연구 지원사업 선정률이 하락하며 기초연구자들의 불만이 커졌다. 과학벨트 핵심시설인 기초과학연구원(IBS)도 중요하지만, 여기에 집중하느라 타 기초연구자에 대한 지원이 약화되는 것도 우려된다.
실제로 올해 20여개의 정부 R&D 과제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2월 정부가 발표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는 정부 예산사업 중 유사 중복사업 600개 이상을 통폐합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R&D 사업도 40여개 포함됐다. 당장 내년에 이 중 절반인 20여개 사업을 통폐합을 통해 중단할 것으로 예상된다.
과학계 한 관계자는 “정부는 중복사업 중단 개수만 제시했지만, 사실상 예산도 함께 감축하겠다는 것”이라며 “중소 규모 사업 중 일부가 사라지고, 여기에 참여하는 연구자들에 대한 지원도 끊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 정책변화 요구돼
정부의 전폭적인 의지가 없이는 R&D 투자 확대가 쉽지 않다. 국가 재정규모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부처별로 세운 내년도 R&D 사업 계획에도 일부 제동이 걸릴 수 있다. 각 부처는 내년도 R&D 사업 추진 계획을 미래부에 제출한 상태다. 사업에 드는 예산은 미래부 조정을 거쳐 각 부처로 배분된다.
미래부 관계자는 “예산은 빠듯한데 여기저기서 요구하는 돈은 많아 예산 조정이 어렵다”고 토로했다.
과학계에서는 투자 확대도 중요하지만 재원 배분 방식도 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 연구자는 “기초과학의 경우 분야별로 예산을 배정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면서 “물론 융합연구가 중요하지만 자칫하면 특정 분야가 소외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 기본적인 몫을 정해주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권건호·송준영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