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만들겠다는 건가요?”
무한히 확장하는 인공지능은 재앙인가 축복인가? 인간의 뇌가 업로드된 컴퓨터는 인격체인가? 영화 ‘트랜센던스’는 인공지능의 명과 암, 인간과 기계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천재 과학자 윌 캐스터(조니 뎁 분)는 반(反)기술 테러단체에 습격을 당해 죽음의 위기에 처한다. 아내이자 동료인 에블린(레베카 홀 분)은 슈퍼컴에 윌의 뇌를 연결해 모든 기억과 언어 습관을 업로드한다. 윌이 죽은 후에도 그의 정신을 보존하고픈 욕망에서다.
에블린은 윌이 ‘탑재’된 슈퍼컴 ‘트랜센던스’를 남편처럼 대하지만 상황은 꼬여만 간다. 잠도 자지 않고 밥도 먹지 않는 트랜센던스는 인터넷 연결을 통해 점점 세력을 확장한다. 그 힘이 인류 초월이 아닌 지배의 단계에 이르자 인간과 기계의 갈등이 정점으로 치닫는다.
현실에서는 아직 완전한 뇌 이식이 불가능하다. 기억을 복제할 수는 있지만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 뇌는 생각과 경험에 따라 모양 자체가 변한다. 우리 신체는 자주 사용하는 부분이 발달하는데 뇌 역시 마찬가지다. 하드웨어가 고정돼 있는 컴퓨터와 근본적으로 다른 지점이다. 컴퓨터에 기억을 이식할 수는 있겠지만 그 기억이 실제 ‘작동’하고 욕망을 일으킬 수는 없는 셈이다.
정체성 문제는 좀 더 근본적인 차이다. 영화에는 과학자들이 인공지능 컴퓨터에 “자각 능력을 증명해봐”라고 요구하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컴퓨터는 “불가능하다”고 대답한다. 이는 곧 사고하고 있는 자신을 파악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인간이 스스로 정체성을 인식하는 것과 다른 점이다. 컴퓨터가 겉으로는 감정을 느끼는 것처럼 보여도 스스로를 인식하지는 못한다. 영화 속 과학자들의 질문은 “정체성이 있느냐”는 물음으로, 인간과 기계를 구별하려는 시도인 셈이다.
그럼에도 인공적인 감각에 대한 연구는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뇌의 다양한 전기 신호를 컴퓨터에 옮겨 일종의 ‘인공 감각’을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촉감, 무게 등을 관장하는 뇌 부위와 신호를 찾아내 컴퓨터에 옮긴 뒤 역으로 이용하면 가상의 감각을 만들어낼 수 있다.
국내에서는 실감교류인체감응솔루션연구단이 미래창조과학부 지원을 받아 2010년부터 이 같은 가상현실 기술을 연구 중이다. 미국 국방부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도 ‘시냅스’라는 인지컴퓨팅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뇌 원리를 본뜬 칩셋을 개발해 ‘인공 뇌’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인간 뇌의 비밀 둘러싼 과학의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인간화된 기계, 기계화된 인간’에 대한 상상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