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선 가진 통신사 '반색'…비용부담 콘텐츠업계 '난색'
미 FCC의 이번 결정은 같은 고속도로라도 돈을 추가로 내면 더 빠른 ‘차로(패스트 레인)’를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인터넷에서도 추가 비용을 부담하는 콘텐츠 사업자들에게 더 빠른 회선이 제공된다.
회선을 가진 통신업계는 반색할 일이나 인터넷 업계는 반발한다. 일반 사용자 역시 인터넷 사용에 추가 비용이 발생할까 우려한다. 벤처업계 역시 고속회선에 대한 부담을 감내할 수 있는 대형 인터넷 기업들만 살아남을 것이라며 반대 의사를 표하고 있다.
◇숨가빴던 표 대결
톰 휠러 FCC 위원장이 마련한 이 방안에는 민주당 성향 위원 2명이 찬성했고 공화당 성향 위원 2명은 반대했다.
민주당 몫의 제시카 로젠워슬, 미그넌 클라이번 위원은 개정안에 흠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번 안의 시행이 가져올 결과에도 우려를 나타냈다. 하지만 결국 당론에 따라 찬성표를 던졌다.
공화당 성향의 아지트 페이, 마이클 오릴리 위원은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면서 인터넷 규제는 의회에서 결정할 문제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준입법기관인 FCC의 특성상 이번 개정안은 그대로 시행될 공산이 크다.
사실, 이번 개정안은 민주당 추천 위원들까지도 노골적인 반대의사를 공식화할 정도로 표결의 향배가 불분명했다. 하지만 휠러 위원장은 원안대로 밀어붙였고, 결국 관철시켰다.
투자회사 코어캐피털파트너스를 운영하고 있는 휠러는 미국의 대표적 통신 박람회인 NCTA와 CTIA 위원장을 지냈다. 작년 미국 대선에서는 자신의 사재 2만1500달러를 포함, 총 100만달러의 선거자금을 조달해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을 도왔다.
지난해 FCC 위원장 임명 시 ‘통신업계와의 유착’ 우려에도 불구, 오바마의 절대적 신임을 받은 휠러는 이번 망중립성 개정안 통과로 더욱 강력한 입지를 다지게 됐다.
◇미국, 망중립성 포기 왜?
가장 직접적인 계기는 지난 1월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를 상대로 제기한 망중립성 원칙 무효소송에서 원고인 버라이즌 측이 승소했기 때문이다. 당시 FCC는 상고 대신 기존 망중립성 규칙을 개정하는 작업에 들어갔고, 바로 그 결과가 이번 개정안이다.
그동안 미국은 세계 시장에서 자국 인터넷산업의 보호 명목으로 강력한 망중립성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구글 등 일부 공룡 인터넷기업의 거대화는 통신업계의 상대적 고사는 물론이고 정부의 통제권에서도 벗어나는 상황까지 발생, 뭔가 다른 차원의 정책 변화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만만찮은 반발
정보통신(IT) 업계와 소비자단체들은 일제히 망중립성 원칙이 훼손됐다고 지적했다. 거대 콘텐츠 공급 업체들은 막강한 자본력으로 빠른 회선을 사용할 수 있지만, 소규모 신생 콘텐츠 공급업체들은 빠른 회선을 이용할 수 없어 경쟁에서 도태될 수 있다는 것이다.
100여명의 활동가들은 이날 FCC 빌딩 앞에서 ‘인터넷을 해방하라’거나 ‘무료 인터넷을 유지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앞서 아마존, 구글, 넷플릭스, 마이크로소프트, 이베이, 야후, 트위터, 페이스북 등 150여개 IT 기업은 개정안 초안이 공개되자 FCC에 서한을 보내 “인터넷에 대한 심대한 위협”이라며 반대 의견을 개진했다.
◇세계시장에 미칠 파장은
유럽은 이미 비교적 느슨한 망중립성 정책을 펴오고 있어, 미국의 이번 개정안 통과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미국과의 균형 유지를 위해 망중립성을 보다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실제로 EU는 최근 역내 메이저 통신사인 텔레포니카와 도이치텔레콤, 오렌지 등을 상대로 데이터 트래픽을 많이 유발하는 일부 서비스의 속도를 제한했는지를 불시에 조사한 바 있다.
한국 역시 큰 파장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이미 지난 2011년 ‘망중립성 가이드라인’을 통해 ‘관리형 서비스’, 즉 별도 추가 비용에 따른 고속 회선의 허용을 명문화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한국 특유의 초고속 인터넷 고품질 덕분에 웬만한 트래픽은 일반적인 최선형(best effort) 회선만으로 안정적 송수신이 충분하기 때문에 별도의 부가 고속망 수요가 크지 않다.
다만 대용량·고품질의 동영상 콘텐츠 사업자들은 향후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시장에서 별도의 추가비용 발생을 피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류경동기자 ninan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