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동부하이텍 어디로 가나

동부하이텍 매각 작업이 진행 중인 가운데 아직 국내에서는 뚜렷한 인수 움직임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자연스레 해외 기업으로 매각 가능성이 점차 고개를 들고 있다. 동부하이텍은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이 2%에 불과하지만 우리나라 기업 중 유일하게 파운드리를 주력 사업으로 영위하는 곳이다. 국내 중소 팹리스의 도우미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국내 매각을 유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반면 동부그룹의 재무 건전성을 조기에 확보하기 위해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매각을 서둘러야 한다는 경제 논리도 팽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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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그룹은 지난해 11월 재무구조 개선안을 발표한 이후 계열사 매각 작업을 진행 중이다. 동부하이텍도 그 일환으로 매각 절차를 밟고 있다. 최대주주인 동부씨앤아이(12.43%) 지분을 비롯한 동부 계열사 지분과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등 특수관계인 지분이 매각 대상이다. 동부하이텍 주식 중 약 37%에 해당하는 것으로 주식가치는 14일 기준으로 1090억원가량이다.

산업은행과 노무라증권이 공동 매각주간사로서 인수자를 찾고 있지만 속도는 더디다. 특히 국내 기업의 움직임이 없다. 인수 후보자로 점쳐졌던 국내 기업 몇 곳이 잇따라 인수 시도를 부인하면서 오히려 해외 기업으로 시선이 쏠리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국내 하나뿐인 파운드리 전문 업체가 해외로 매각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파운드리는 가뜩이나 취약한 국내 팹리스와 시스템반도체 산업 생태계의 한 축을 담당하는 고리다. 자체 파운드리를 보유하지 않은 팹리스 기업이 반도체를 설계·개발하면 이를 파운드리 전문 업체가 위탁받아 생산한다. 만들어진 반도체는 수요 기업에 전해져 완제품과 서비스의 기반이 돼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팹리스-파운드리-수요기업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생태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생태계에서 파운드리 고리를 연결하는 동부하이텍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이유다.

국내 기업 중에선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사업을 크게 하고 있지만 글로벌 대기업 고객 중심이어서 중소 팹리스 기업이 이용하기엔 쉽지 않다. SK하이닉스가 일부 파운드리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주력 사업이 아니다.

국내 팹리스 업체 A사 관계자는 “자국에 파운드리 업체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매우 크다”며 동부하이텍의 해외 매각을 반대했다. 위탁생산 물량이 많지 않은 중소 팹리스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파운드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국내와 해외 파운드리 기업 사이에서 가격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앞서 한국반도체산업협회가 국내 팹리스 기업 의견을 수렴했을 때도 국내 기업으로 매각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대영 산업연구원 박사는 “동부하이텍은 일반 파운드리와 달리 전력반도체 등 아날로그 공정에 강해 차별성을 지녔다”며 “국내 기업으로 유지해 반도체 산업 발전에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국내 매각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도 있다. 동부그룹의 재무 건전성이 악화된 상황에서 구조조정 작업이 늦어지면 국가 경제 측면에서 더 큰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는 이유다.

동부하이텍의 기술이 해외 선진 기업에 비해 앞선 편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첨단 기술 기업의 해외 매각시 가장 문제가 되는 기술 유출 피해가 크지 않다는 뜻이다.

해외에 매각되더라도 파운드리 시설이 고스란히 한국에 남아 있기 때문에 국내 중소 팹리스가 파운드리 서비스를 이용하는데 문제가 없다는 의견도 있다. 오히려 해외 기업이 인수해 설비를 업그레이드하거나 서비스를 강화하면 국내 팹리스에 득이 될 것이라는 기대론도 있다.

반도체 시장조사 업체 관계자는 “동부하이텍이 보유한 기술이 해외 유출을 걱정할 정도의 수준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며 “국내와 해외 여부를 떠나 투자 여력이 있는 기업에 매각해 회사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정부 역시 유보적인 입장이다. 정부가 직접적으로 관여하기 위해서는 해당 기업이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된 기술을 보유해야 하는데 동부하이텍은 그렇지 않다.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산기법)’에 따르면 정부는 국가핵심기술을 가진 기업이 해외 인수합병(M&A)을 시도할 때 승인과 신고수리 절차를 통해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미 자체 검토 결과 동부하이텍이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하지 않아 산기법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국내 반도체 산업 생태계 발전 차원에서는 동부하이텍의 국내 매각이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정부가 노골적으로 기업 인수 파트너를 고를 수는 없는 상황이다. 하루 빨리 매각을 관철시켜 중견 그룹을 정상화시키려는 경제 관계 부처와의 대립도 부담스럽다. 산업부 관계자는 “국내 팹리스 업계가 동부하이텍의 해외 매각을 반대한다는 의견은 접수했지만 현재로서는 정부가 공식적으로 나서서 해외 매각을 견제할 수단은 없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했다.

국내외 매각에 관한 의견이 엇갈리지만 이 가운데서도 단기 차익을 노린 사모펀드나 한국을 추격하는 중국 기업으로의 매각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데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분위기다. 인수 기업이 추가 투자 없이 동부하이텍이 현재 보유한 설비로 파운드리 서비스를 운영하다가 필요한 부분에서 이익만 취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 기업으로 매각에 대한 걱정이 크다.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중국이 동부하이텍을 자국 반도체 산업의 가격 경쟁력 배가를 위한 생산기지로 활용하는 경우다. 외국계 반도체업체 B사의 지사장은 “동부하이텍을 저렴한 가격에 인수해 이를 기반으로 생산 단가를 낮추면 중국 반도체 기업의 경쟁력은 더욱 높아질 것”이라며 “한국 정부와 반도체 업계가 주의해야 할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지적했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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