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과학연구원(IBS)과 한국연구재단은 기초과학분야 연구 지원의 역할 분담을 잘 해야 할 것입니다. IBS는 연구의 수월성을 추구할 수 있도록 새로운 패러다임의 연구소로 키워주는 역할을 하고 한국연구재단은 일반 연구자들의 풀뿌리 기초연구를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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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임명된 정민근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은 IBS의 향후 진로에 대해 이 같은 소신을 피력했다.
IBS는 그동안 과학기술특성화대학 쪽으로 사업단을 꾸려 기초연구 육성 의미가 상당부분 퇴색한데다 기초연구 육성 방법론과 관련해 가속기 등에 올인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꾸준히 받아왔다.
“기초연구와 기초과학이란 말을 혼용해 쓰고 있는데, 재단은 국책 및 기초연구를 지원합니다. 수학이나 물리, 화학, 생명과 같은 기초과학을 비롯한 응용연구에 대비한 기본적인 연구를 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직접적인 연구 결과보다는 연구자들이 하고 싶은 연구를 하되, 그것이 점차 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는 시작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정 이사장은 과학기술계 현안에 대해서도 거리낌 없이 소신을 밝혔다.
최근 R&D 예산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빗댄 ‘연구재벌’ 논란과 관련해 정 이사장은 “예산을 똑같이 나눠 가질 수 없기에, 연구역량에 따라 연구비를 지원받는 것”이라며 “다만 개인 연구비인지 집단 연구비인지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연구분야에 따라 실험 재료비 등의 차이는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개인 연구비로는 3억원 정도가 적당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전국 대학 8만5000명의 교수 가운데 5만명을 이공계 교수라고 볼 때, 이들 5만명이 모두 연구에 매진해야 하는지는 따져봐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적 했지만, 과학기술논문색인(SCI) 등으로 평가하고 드라이브를 걸었기 때문에 모두가 논문을 써야한다고 인식하고 있는데, 이제는 정리돼야 합니다.”
5만명 중 1만명은 기초연구 및 핵심 연구를 하고 나머지 4만명은 기업과 연계하든지 5000만원 이내의 소액 과제로 연구하는 식으로 가면 예산 분배가 훨씬 용이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정 이사장은 “지금은 전체가 연구비를 위한 연구를 하고 있는 것 같다”며 “교육 쪽으로도 눈을 돌려 학생들이 실제로 사회에 나갔을 때 기여할 수 있도록 인력양성 쪽에도 관심을 쏟아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많은 대학교수를 연구로 몰기보다는 실용적인 교육으로 바로 써 먹을 인력 양성에 시간을 많이 쓰도록 지원을 더 늘려야 한다는 입장도 덧붙였다.
정부의 창조경제에 대해서도 한마디 거들었다. 창조경제도 그렇지만, 과학기술도 너무 조급하면 안 된다는 주장을 폈다. 재단은 전자통신과는 달리 신약이나 생명과학이나 어떤 결과가 당장 나오는 곳이 아니라, 창조경제를 지원하는 저변을 만들 수 있는 곳이라는 입장이다.
우리나라 노벨상 수상에 대해 정 이사장은 “일본만해도 우리보다 거의 300~400년 앞서 개화한 나라고, 우리는 그 격차를 60년 만에 따라잡은 것만 해도 굉장하다”며 “상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이 높고, 개인적으로도 수상자가 나왔으면 하지만, 우리가 노벨상을 탈 만큼 저력을 갖췄는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는 신중론을 내놨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대비 우리나라 R&D 투자는 상당한 수준이지만, 아직은 상에 목적을 두기보다는 그런 수준의 연구지원을 하고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둬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 이사장은 출연연구기관의 방향에 대해 “ETRI나 생명공학연구원 같은 큰 연구소는 그 분야 연구재원을 가지고 외부 용역 연구를 맡기는 역할을 해야 한다”며 “연구소 연구원의 미션 절반은 연구고 나머지 절반은 연구기획과 관리가 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연구소가 받은 미션을 연구원 혼자 모두 할 것이 아니라 30% 정도는 외부 연구자가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한 전제로는 먼저 연구중심제(PBS)가 없어져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출연연 연구원을 공무원화하는 것이죠.”
기관운영에 대한 소신도 밝혔다.
“연구재단이 만들어지고 4년 반 동안 3명의 기관장이 거쳐 간 것에 놀랐습니다. 화학적 통합이 이루어져야 하는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긴 호흡으로 장기적인 재점검이 필요합니다. 포스텍은 지난 2월 퇴직했습니다. 돌아갈 곳이 없습니다. 기관의 역할 재정립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동안 ‘손톱 밑 가시’로 불리며 퇴직이 3년 남으면 보직을 받지 못하도록 정한 내규에 대해서도 한마디 거들었다.
“지난 1월 오자마자 브레이크를 걸었습니다.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능력이 있으면 계속하는 것이고 능력이 없으면 안하는 것이 맞습니다. 보직이 제한적이어서 그동안 서로 양보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대안으로 정 이사장은 “현재 파견받는 PM자리에 재단 내부직원이 가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며 “무엇보다 중요한 건 30년이 넘었으면 직원 보직이 문제가 아니라 전문성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연구윤리 같은 몇몇 분야에 대해서는 보직 못지않은 위상을 갖는 전문가 트랙을 만들어 주자는 것. 외부에 연구용역을 줄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전문가가 나와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 이사장은 “자기가 맡은 일을 즐기면서 했으면 좋겠다”며 “현대인은 사실 집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길기에 직장 동료와의 관계와 자세를 고민하고, 즐겁게 이를 승화시킨다면 일터가 즐거워 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