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가 야심차게 추진해온 동해안 원자력클러스터 사업이 좀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경북도가 2007년부터 구상했던 이 사업은 국내 가동 원전 23기 중 11기가 동해안에 있다는 점이 출발점이었다. 2012년 5월 이명박 대통령이 국책사업으로 선정하겠다고 했으나 약속으로 그쳤다.
이 사업은 2012년부터 2028년까지 16년간 13조5000억원을 투입, 동해안에 제2 원자력연구원과 원자력기술표준원, 인력양성기관 유치 등 총 12개 사업을 추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문제는 사업 2년이 지나도록 답보상태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계획을 내실 있고 실현 가능하도록 재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정부 차원에서 추진할 사업에 지자체가 나서는 모양새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명분 잃은 원자력클러스터
원자력클러스터 사업은 7년 전 계획 단계부터 그림을 잘못 그렸다는 지적이다. 사업 추진이 정부의 원전정책과 맞물려 있어 지자체가 민간주도 방식으로 진행하기에 무리가 있다는 분석이다.
김동영 경북도 창조경제산업실 에너지산업과 주무관은 “정부 안팎에서 수십조가 투입되어야 할 국가주도 사업을 지자체가 하겠다고 나선 것에 거부감이 있다”며 “이런 인식이 사업추진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또 원전 시설이 동해안에 몰려있다는 점이 사업 추진의 가장 큰 명분이기도 하지만 집중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지난해 말 동해안 원자력클러스터 정책세미나에서 심기보 한국원자력문화재단 에너지교육실장은 “클러스터를 이유로 원전 시설을 한 곳에 집중시키겠다는 것은 위험한 구상”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사업 시작 직후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원전비리가 불거지자, 현 정부의 원전 정책은 ‘확대’에서 ‘안전’으로 무게중심이 옮겨졌다. 클러스터 사업도 답보상태가 불가피했다.
원자력클러스터 각 사업 꼭지마다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쳐야한다는 것도 진척이 안 되는 이유 중 하나다. 이미 경북도는 지난해 영덕원자력테마파크와 국제원자력기능인력교육원 설립을 위한 예타사업을 신청했지만 모두 탈락됐다.
◇사업추진 2년…성과는 ‘글쎄요’
경북도는 원자력클러스터사업을 위해 원자력산업진흥원 설립, 제2 원자력연구원 유치, 원자력 수소실증단지, 원자력기술표준원 설립 등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원자력산업진흥원은 정부 예산이 반영되지 않았고, 제2 원자력연구원 유치는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협상에 진척이 없어 난항이 예상되고 있다. 또 원자력기술표준원도 최근 용역을 시작해 이르면 올해 말쯤에나 산업통상자원부에 사업 신청을 할 수 있다. 스마트시범원자로 건설과 원자력수소실증단지 구축사업도 진전이 없다.
원자력클러스터 12개 사업 중 유일하게 인력양성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2012년부터 경주 양북면소재 글로벌원전기능인력양성사업단에서 관련 분야 인력을 양성하고 있고, 원자력 인력양성사업을 통해 포스텍과 위덕대 등 일부 대학이 인력을 배출하고 있다. 하지만 기대치를 밑도는 형국이다.
정군우 대구경북연구원 미래전략연구실 박사는 “인력양성 분야는 어느 정도 성과를 내고 있다”며 “각 사업은 장기적 전략으로 하나씩 실현시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거품 걷어내고 내실 있게 재설계 필요
경북에는 현재 신월성 2호기, 울진 신한울 1, 2호기 등 원전 3기를 건설하고 있다. 여기에 2기가 추가로 건설될 예정이다.
신규 원전 후보지로 지정된 영덕 4기를 제외하더라도 경북에는 향후 총 16기의 원전이 가동될 전망이다. 여기에다 경주에는 오는 6월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장이 완공될 예정이다.
원자력클러스터사업에 포함된 원전 안전을 위한 시설 건설과 유치는 제자리걸음인데 원전과 방사성폐기물처리시설만 동해안에 속속 들어서고 있고 있다.
이재훈 영남대 경영학부 교수는 “원자력클러스터사업은 기획단계에서 실속도 없이 너무 화려하게 구상됐다”며 “지역 혁신도시로 이전하는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전력기술 등과 연계해 보다 내실 있는 사업 위주로 재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구=정재훈기자 jh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