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협력사 그렇게 소중해하던 삼성전자, 지금은 후방 산업 생태계 파괴

지난 2010년 말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협력사 사장들은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행사 마지막에 신종균 사장이 새로 출시된 갤럭시탭을 직접 협력사 사장들에게 건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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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사장은 “좋은 부품 덕분에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었다”며 “새해에도 아낌없는 협력과 지원을 부탁드린다”면서 협력사 사장들에게 일일이 인사말을 전했다.

협력사 사장들에게는 잊지 못할 감동 이벤트였다. 삼성전자가 옴니아를 비롯해 초기 스마트폰 시장에서 고전했음에도 묵묵히 역할을 다해준 협력사에 대한 고마움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신 사장이 협력업체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보여주는 일화다.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안 돼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1위를 차지했고 지금도 그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삼성전자 무선사업부가 협력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당시와 사뭇 다르다. 스마트폰 시장 성장 둔화 우려가 커지면서 원가 부담을 대부분 협력사에 전가하는 모습이다. 무선사업부는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지만 협력사들은 수익성 하락에 힘든 시간을 보냈다.

무선사업부는 최근 △소재·부품 자체 생산 △불합리한 판가 인하 △중국 업체 1차 협력사 등록 등으로 국내 협력사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이는 삼성전자 스마트폰 공급망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무선사업부가 부품 자체 생산을 처음 시작한 것은 지난 2011년이다. 카메라모듈 수급 불안을 이유로 베트남 공장에 월 600만개의 생산능력을 구축했다. 이후 스마트폰 케이스·카메라 렌즈·터치스크린패널(TSP) 등 수익이 되는 소재·부품은 자체 생산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소재·부품을 직접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관련 협력사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특히 지난해에는 삼성전자 전략 스마트폰 갤럭시S4가 시장에서 기대 이하의 판매량을 기록하면서 협력사들의 어려움은 더욱 가중됐다.

그나마 있는 소재·부품 발주 물량마저 삼성전자의 베트남 공장 자체제작 라인에 할당되면서 협력사들은 가뭄에 시달렸다. 대다수 1차 협력사들이 지난 2012년 5~7% 수준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지만 작년에는 겨우 적자를 면한 수준에 그쳤다.

무선사업부 협력사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에는 적자를 내더라도 생산 라인을 가동하는 게 우리 회사 목표였다”며 “삼성전자가 소재·부품 공급 부족을 우려해 협력사들의 생산능력을 너무 높여놓은 것이 화근”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는 지난해부터 중국 협력사를 잇따라 1차 벤더로 등록시키고 있다. 중국 업체를 지렛대로 국내 협력사에 대한 판가 인하 압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중국 협력사를 끌어들인 이후 상당한 원가 절감 효과를 봤다. 문제는 국내 소재·부품 협력사들은 수익성 악화로 경쟁력이 취약해지고 있고, 중국 업체들은 삼성전자의 기술과 노하우를 습득하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는 지난해 중국 사출업체 자누스와 치팅을 1차 벤더로 승인하고 스마트폰 케이스를 공급받고 있다. 이들 업체는 삼성전자 프리미엄 스마트폰인 갤럭시S4용 케이스까지 생산했다. 조만간 갤럭시S5용 케이스도 만들 것으로 보인다.

무선사업부는 중국산 케이스의 품질을 끌어올리기 위해 중국 협력사에 상당한 기술과 노하우를 전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멀티증착뿐 아니라 도장 기술도 중국 협력사에 고스란히 넘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스마트폰 디자인이 중요해지면서 케이스 사출물보다 도장 등 후공정에서 부가가치가 나온다. 국내 협력사는 자금력에 기술력까지 갖춘 중국 업체와 경쟁해야 하는 처지다.

또 다른 무선사업부 협력사 관계자는 “과거에는 조잡한 짝퉁폰 케이스나 만들던 중국 사출 업체들이 최근에는 한국산 못지않은 제품을 내놓고 있다”며 “삼성전자와 거래하면서 중국 업체들의 기술력이 상당히 좋아졌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는 케이스뿐 아니라 다른 부품도 중국산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최근 중국 CNI·오필름·톱터치 등 중국 TSP 업체들이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1차 벤더로 승인받았다. 중국 협력사들이 들어오면서 국내 시장에서 TSP 가격은 빠른 속도로 하락하고 있다. 지난 2012년 15달러 수준에 팔리던 4인치 크기 필름타입(GFF) TSP 가격은 현재 10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삼성전자는 2분기까지 TSP 가격을 추가로 10%가량 떨어뜨린다는 계획을 주요 협력사들에 전달했다. 가격 경쟁에서 밀린 국내 TSP 업체들은 수익성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중국 업체들의 가장 큰 무기는 가격 경쟁력이다. 이번에 삼성전자 1차 협력사로 등록된 TSP 업체 중 상당수는 커버유리 제조업체 자회사다. 모기업으로부터 커버유리를 싼 가격에 조달할 수 있다. 커버유리는 GFF TSP 원가 중 40%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탄탄한 내수 시장에다 최근 한국 시장까지 진출하면서 중국 TSP 업체들은 규모의 경제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중국 협력사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거래해서 수익을 내는 것보다 생산 기술과 노하우를 배우는 게 더 의미가 있다”며 “또 삼성전자와 거래 실적이 있으면 글로벌 스마트폰 업체에 납품하기도 수월하다”고 말했다.

실제 삼성전자와 거래하면서 중국 TSP 업체들의 기술력은 점차 강해지고 있다. 중국 업체들은 근래 첨단 공정을 도입해 품질 경쟁력을 강화하는 한편 일본·한국 기업에서 퇴직한 엔지니어를 고용해 공정 노하우도 습득하고 있다. 조만간 중국 업체들은 고부가 슬림형 TSP 시장에도 진출할 것으로 보인다. 아직은 국내 업체들이 독점 생산하고 있지만, 중국 업체들이 진입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또 다른 국내 협력사 관계자는 “중국 협력사들은 삼성전자뿐 아니라 ZTE·화웨이 등 중국 세트 업체에도 소재·부품을 공급하고 있다”며 “당장 이익을 높이기 위해 중국 협력사를 끌어들이다가는 나중에 부메랑이 돼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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