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대기업 협력사 ‘못 살겠다’ vs 정부·자체 개발 중기 ‘엄살`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좋은 규제와 나쁜 규제로 나눠, 좋은 규제는 개선하고 나쁜 규제는 뿌리 뽑아야 한다”며 “일자리 창출과 투자를 가로 막는 규제는 경제의 암 덩어리지만, 복지·환경·개인정보보호와 같이 필요한 규제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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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발언처럼 정부는 규제를 ‘좋다(순효과)’와 ‘나쁘다(역효과)’ 둘로 나누는 작업과 함께 나쁜 규제를 솎아내는데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 감안하면 지난 2012년 말 확정된 PC의 중소기업간 경쟁제품 지정이 좋은 규제인지 나쁜 규제인지 따져봐야 한다. 대기업과 이들 협력사는 제도가 ‘나쁜 규제’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대기업의 진출 제한이 오히려 생태계를 파괴했고 이것이 협력 중소기업을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는 건의서에서 박 대통령이 나쁜 규제 사례로 언급한 ‘일자리 축소’ 측면에서 접근했다. 건의서에 함께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주문자상표부착(OEM) 납품 중소기업을 포함한 대기업 협력 중소기업은 1년새 121명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구체적으로 E사는 OEM 물량 축소 우려로 2012년 말 사업장을 폐쇄해 일자리 약 60개가 없어졌으며 C사와 S사는 1년 새 생산량이 각각 7만대와 3만대 줄어들며 종업원 수가 148명에서 97명, 44명에서 38명으로 줄었다. PC 유통 소상공인 일자리도 540여명 줄어든 것으로 파악했다.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매출이 47%가량 줄어들었으며 이것을 근거로 일자리 축소분을 추정했다. 여기에 대기업 PC 유통 소상공인은 대기업 사업 비중 축소로 애프터서비스(AS)와 부품공급이 힘들게 되는 등 경영난을 겪고 있다고 전자진흥회는 전했다.

올해 대기업의 조달시장 참여비중이 25% 이하로 축소될 경우 협력사와 유통 소상공인의 피해는 더욱 커질 것으로 전자진흥회는 예측했다. 협력사와 소상공인 일자리가 각각 약 130명과 450여명 없어질 것이란 분석도 내놨다. 추가 일자리 상실이 불가피한 만큼 예외(대기업 참여) 비중을 올해 당초 예정된 25% 이하에서 지난해와 동일한 50% 이내로 유지해 달라는 것이 이들 업계의 요구다. 실제로 대기업 협력사인 C업체 관계자는 “경쟁 협력사 한곳이 문을 닫아 근근이 물량을 유지하고 있지만 올해 대기업 물량이 추가로 줄면 우리도 버티기 힘들다”고 말했다. 회사는 현재 두 개의 PC 생산라인을 가동하고 있지만 물량이 줄면 하나로 축소해야 하는데 이 경우 ‘규모의 경제’가 형성되지 않아 지속 경영이 힘들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도 힘들지만 2·3차 협력사는 더 힘들다”고 덧붙였다. 대기업 관계자는 “대기업의 참여 제한만으로 보이지만 한 꺼풀 더 떼어내면 피해는 중소기업에 그대로 미친다”며 제도 재검토를 요청했다.

전자진흥회는 이 제도가 중소기업 전반이 아닌 몇몇 중소기업만 이득을 본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규모가 큰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빠진 자리를 그대로 꿰차면서 제도 효과가 대다수 중소기업으로 미치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2012년과 2013년 데스크톱·일체형 PC 조달발주 내역을 보면 S사·A사·D사·J사·N사 등 5곳 중소기업이 전체 중소기업 조달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12년 95.1%에서 지난해 94.5%로 거의 변화가 없었다. 5개사가 제도 수혜를 대부분 누린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정부는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전자진흥회 주장과 달리 자체 파악한 결과 순효과가 크다는 점을 강조한다. 대표적으로 PC 유통업체는 수익성이 개선됐다고 전했다. 과거 대기업만을 대상으로 거래하다가 중소 PC업체와의 거래를 시작하면서 지위 상승과 함께 불합리한 관계의 개선으로 수익성이 좋아졌다는 설명이다. 또 협력사 물량 축소에는 대기업 참여 제한도 있겠지만 대기업의 생산라인 해외 이전이 더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도 들었다. 대기업 협력 중소기업이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한 노력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중기청 관계자는 “기존 대기업 협력사보다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도 직접 PC 조달 시장에 참여한다”며 “대기업 협력사는 어렵게 확보한 대기업 이권을 놓지 않으려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자체 PC를 개발 중인 중소기업도 제도 시행에 만족감을 나타냈다. 황홍준 정부조달컴퓨터협회 부회장은 “제도 시행 후 관련 중소기업(자체 PC 개발)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 조달청 나라장터 등록 PC제조업체도 시행전 13~14곳에서 최근 20곳으로 확대됐다”며 “이는 PC 조달시장 환경이 개선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PC의 중소기업간 경쟁제품 지정 영향을 면밀히 검토해 필요하다면 후속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2012년 제도 시행 당시 2년 후인 올 1분기에 제도 점검에 나선다고 밝혔다. 좋은 의미로 도입한 제도가 의미가 퇴색하거나 이를 악용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철저한 분석으로 사후관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계 한 관계자는 “‘좋은 규제’도 시간이 지나면서 ‘나쁜 규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며 “대기업 참여를 제한할 땐 도입 후 영향을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준배·한세희기자 joo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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