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균의 스타트업 멘토링]<28>스타트업, 디지털 유목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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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하면서 개인사업자를 등록해야 하는지, 법인사업자를 등록해야 하는지 고민한다. 두 가지 선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제3의 선택, 즉 ‘무사업자’ 등록을 추천한다. 사업자등록이 사업의 시작은 아니다. 가능하면 가볍고 부담 없는 상태를 유지하며 쉽게 실패하고 쉽게 흩어지고 쉽게 다시 모일 수 있는 게릴라가 되어야 한다.

사업자 등록은 내 비즈니스모델이 검증돼 더 이상 헤어질 수 없고, 큰 매출이 생겨서 세금계산서를 직접 발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후, 맨 마지막에 할 것을 권한다.

법인을 등록하면 법적 의무사항들이 생긴다. 기본적으로 복식부기회계 기장을 해야 한다. 외부 회계법인에 맡기더라도 비용이 들고 시간도 소모된다. 매년 절차에 따라 주주총회를 열고 관련 서류를 보관하고 연말결산 후 세금 신고도 해야 한다. 사무실을 옮기거나 대표이사가 이사를 했는데 등기하지 않으면 벌금이 나온다.

법인을 청산하지 않은 채 그냥 두면 국세청에 기록이 남아 있다. 청산 과정은 사업등록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까다롭다. 법인과 관련된 지켜야 할 사항들 중에는 단지 세금이나 돈 문제뿐 아니라 형사적인 문제가 되는 사안들도 많다.

스타트업은 멤버들끼리 의리를 갖고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팀이 많다. 의리도 좋지만 비즈니스모델에 적합한 사람을 모으는 것이 더 중요하다. 다른 방향의 버스를 탄 걸 발견했는데 버스운전수와의 의리를 생각하며 종점까지 가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빨리 실패하고 빨리 흩어지고 빨리 다시 모이는 곳이 바로 스타트업이다. 스타트업은 임시적인 조직이다.

법인을 설립하지 않았지만 공동 창업자끼리 지분이나 역할을 사전에 명확히 할 필요가 있는 때는 ‘주주 간 계약’을 하면 된다. 법인 설립 전이어서 주주라는 용어가 불편하면 ‘공동 창업자 간 계약’이라고 해도 된다.

스타트업은 언제든지 짐 싸서 이동할 수 있는 ‘디지털 유목민’이 돼야 한다. 풀을 다 뜯어 먹어 풀이 없는데도, 집을 지어놓고, 책임질 직원을 뽑아서 부담스러워하는 스타트업들이 많다. 물론 빚이라는 덫에 걸려 오도 가도 못하고 주저앉는 일도 있다.

지속 가능함이 확인되기도 전에 성급하게 터를 잡고 자리 잡는 건 디지털 유목민이 하는 일이 아니다.

프라이머 대표 douglas@prim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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