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균의 스타트업 멘토링]<26>가치의 짝궁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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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균 프라이머 대표

광고회사에서 잘 나가던 ‘닉’은 외부에서 스카우트된 상사 ‘달시’ 때문에 위기를 맞는다. 경험도 없는 여성제품 광고 회의를 해야 한다. 아이디어를 억지로 짜내느라 매니큐어를 칠하고 제모 왁스도 발라본다. 여성스타킹을 신고 브래지어를 들고 있다가 딸에게 변태로 오해도 받는다. 그러던 중 욕조에서 미끄러져 헤어드라이어에 감전돼 기절했다가 깨어나니 여자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왓 위민 원트(What Women Want)’라는 영화 이야기다. 제품을 먼저 정해놓고 이걸 왜 써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사용하게 할 지 고민하는 광고업계 종사자의 고충이 잘 담겼다.

스타트업계에서도 이 같은 일이 벌어진다. 순간에 떠오른 아이디어로 제품부터 결정하고 고객의 문제와 필요를 억지로 끼워 맞춘다. 창업하기로 먼저 결정해 놓고 아이템을 고민하거나 아이템을 먼저 결정해 놓고 고객을 역으로 맞춘 사업계획서는 꼭 표시가 난다. 억지 논리로 채워져 있다.

설득과 논쟁을 가설 검증의 도구처럼 쓴다. 복잡한 기술과 숫자를 제시하며 설득하려 한다. 화려하고 방대한 프레젠테이션으로 밀어 붙인다. 가치 있는 것을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는 많이 듣는데 정작 가치의 짝인 고객의 문제점을 발견한 것에서 출발한 사업 이야기는 드물다.

고객의 문제점과 이를 해결하는 가치는 항상 짝을 이룬다. 이를 ‘문제-가치 핏(problem-solve fit)’이라 부른다. 핏은 궁합이 맞아야 한다. 고객이 억지춘향으로 끌려 나온 듯 등장하면 안 된다. 문제-가치 핏이 천생연분인 좋은 가설은 말도 설득도 필요 없다. 저절로 동작한다.

사실은 고객을 위한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게 아닐까. 비싼 취미 활동으로 하는 사업이나 연대보증을 서서 빚을 얻어 고용을 창출하고 수집한 데이타를 공짜로 나눠주며 즐거워하는 비싼 자선 사업은 이 칼럼의 대상이 아니다. ‘구체적인 고객의 구체적인 문제점이 없다면’ 스티브 잡스 할아버지가 멘토로 오셔도 두 손 두 발 들고 되돌아 가실거다.

문제점-가치 핏은 소모품과 같다. 검증하다가 ‘와우!’ 하지 않으면 미련 없이 버려라. 미련 때문에 여기저기 땜질해 쓰는 게 아니다. 땜질하고 항생제로 변형된 ‘수퍼 가치’ 비즈니스에 빠지지 말라.

프라이머 대표 douglas@prim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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