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의 미디어 공명 읽기] <9> 비트맵 이미지

글자나 그림을 컴퓨터 화면에서 보기 위해서는 대상을 구성하는 디지털 정보를 이미지로 처리해야 한다. 이미지를 구현하는 방식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비트맵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벡터 방식이다.

Photo Image
자카드 직조기로 짜낸 ‘기도서’

래스터 이미지라고도 불리는 비트맵 이미지는 각 픽셀을 0과 1의 이진법으로 처리해 1로 지정된 픽셀에만 특정 색을 넣어 형태를 구현한다. 이와 달리 벡터 이미지는 특정한 형태를 수학적 함수로 표현해 구현한다. 예를 들어, 일정한 범위를 지정한 후 일차함수로 표현하면 직선이 만들어진다.

일반적으로 비트맵 이미지는 벡터 그래픽과 비교해 표현력이 좋고 처리 속도가 빠른 반면 확대할 경우 해상도가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그리고 이미지를 구성하는 정보량이 벡터 이미지보다 커진다. 그러나 이런 단점은 컴퓨터의 디스플레이 및 저장 능력이 늘어나고 네트워크 전송 폭이 확대되면서 지금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실 1970년대 말 이후 문화, 과학, 예술 분야에서 컴퓨터 그래픽이 크게 발전한 것은 비트맵 이미지 처리기술의 등장에 힘입은 바 크다. 핵심은 사실주의 구현에 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할리우드는 당시까지 조악한 특수효과로 표현하던 대상을 사진사실주의적인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해내 새로운 미학을 만들어냈다. ‘쥬라기공원’ ‘터미네이터’ ‘주만지’와 같은 영화는 이런 사실주의적인 컴퓨터 그래픽을 상업적으로 활용한 대표적인 예다.

점 하나하나를 지정해 원하는 형태를 만들어내는 이런 기법은 19세기 초 천을 짜는 방적 기술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영국의 조셉-마리 자카드는 1801년 새로운 직조기를 발명하는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자카드 직조기다. 이것이 기존 직조기보다 뛰어난 점은 레이스와 같은 무늬의 천을 짜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정교한 무늬는 사람의 손으로만 짤 수 있었는데, 자카드는 무늬를 만들어가는 사람의 동작을 단계별로 구분해 이 과정을 나무에 구멍을 뚫어 이른바 ‘프로그래밍’을 했던 것이다. 이는 IBM의 창업자인 홀러리스가 1890년 인구센서스 집계에 활용한 펀치카드와 동일한 원리다.

당시 자카드 직조기 등장을 보고 잠재적 능력에 주목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시인 바이런의 외동딸인 에이다 러브레이스로, 그녀는 애널리틱 엔진이라는 컴퓨터를 개발하던 찰스 배비지에게 “자카드 직조기가 꽃과 잎을 짜듯 애널리틱 엔진도 수학적 패턴을 짤 수 있다”고 말했다. 당시 그녀는 여성이라는 한계 때문에 그 이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었지만 남녀를 통틀어 역사상 최초의 프로그래머로 간주된다.

자카드 직조기는 일반 직물만 짜낸 것이 아니었다. 1880년 경 프랑스에서는 자카드 직조기로 ‘기도서(Livre de Pri〃res)’를 짜냈다. 복제 대상의 기도서는 우리 시대의 책처럼 단조롭고 밋밋한 것이 아니라 손으로 글자와 그림이 컬러로 화려하게 쓰고 그려진 ‘채색 서적’이었다. 각 페이지는 현대적인 비트맵 그래픽으로 재현한다고 해도 엄청나게 많은 픽셀이 요구되는 정보량이다.

놀랍게도 자카드 직조기는 이처럼 복잡한 페이지를 정교하게 한 점 한 점 나무에 구멍을 뚫어 프로그래밍한 후 비단 실로 표현해 냈던 것이다. 매 페이지를 이렇게 짜낸 이 기도서는 현대적인 고해상도 컴퓨터 그래픽 이미지에 비견되는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영화 ‘원티드’에서 암살 대상을 암호화해 천의 무늬로 짜내는 직조기는 영화의 비트맵 이미지와 직조기 이미지 사이의 공명을 보여주는 알레고리다.

이재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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