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10년 후 먹거리 있을까... 차세대 기술 연구개발(R&D) 기능 상실 우려

단기성과 집착 버리고 장기적 R&D 필요

세계 최고의 기업을 지향하는 삼성 그룹에 최근 미래기술 확보를 도외시하는 듯한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10년 이상 장기 과제로 상용화할 차세대 기술 연구개발(R&D) 기능을 축소하는 한편 야심차게 추진한 신설 연구소 운영 방안도 마련하지 못해 주춤하는 모양새다. 단기성과에 집착한 나머지 장기적인 성장동력을 놓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차세대 기술 연구 중심의 종합기술원(종기원) 인력을 최근 절반으로 축소하고 종기원에도 당장 사업화할 수 있는 아이템을 발굴하도록 주문했다. 이곳에서는 D램과 낸드플래시 메모리를 대체할 수 있는 반도체 기술, 그래핀 등 미래 소재 등의 연구를 진행해왔다.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선택한 소재사업 역시 R&D 방향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문을 연 삼성소재연구소는 제일모직·삼성정밀화학 등 각 계열사 연구원들이 사무실만 옮겨놨을 뿐 공동 R&D를 하거나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방안은 내놓지 못한 상태다. 각 회사 파견 직원들이 건물만 함께 쓰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연구소 기획을 담당하는 것으로 계획됐지만 계열사들과 어떤 식으로 업무를 조정할지 구체적인 안은 나오지 않았다”고 실토했다.

이처럼 근래 삼성이 미래 기술 개발을 후순위로 미뤄 놓은 것으로 비쳐지는 일련의 움직임은 세계 경기 불확실성에 따른 단기성과, 즉 실적 악화 우려 탓으로 보인다. 그룹 영업이익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삼성전자 영업이익률은 지난 4분기 14%대로 전 분기에 비해 3% 이상 급락했다. 연간으로는 사상 최대 실적을 냈지만 영업이익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스마트폰 시장이 포화돼 올해를 장담하기 어렵다.

이와 더불어 완제품 사업의 입김이 지나치게 커진 것도 한몫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 시스템LSI 사업부는 지난해 64비트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경쟁사에 앞서 출시한다는 목표로 개발했지만 무선사업부의 요구로 보류한 바 있다. 결국 애플이 먼저 64비트 AP를 내놓으면서 뒤늦게 쫓아가는 형국이 됐다. 내부 거래 시장(캡티브 마켓)의 요구 사항을 우선 처리하다 보니 후방 산업 관계사가 차세대 기술을 연구할 수 있는 입지가 좁아진 것이다.

최근 삼성에서 퇴사한 한 고위 임원은 “계열사 신임 최고경영자(CEO)들이 당장 수익성에 급급할 수밖에 없는 평가 제도가 가장 문제”라며 “지금이야말로 장기적인 R&D로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임에도 단기실적에 매몰돼 있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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