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아동 보호의 이중성

Photo Image

매주 일요일 저녁 황금시간대 TV예능 판을 어린이들이 장악했다.

KBS, MBC는 아예 어린이들과 그 아빠들의 24시간 밀착 영상을 메인 프로그램으로 내보내고, 꼬아 봤자 결국은 술래잡기 격인 SBS 프로그램 또한 어린이 시청자들(주로 초등학생)로부터 열광적인 지지를 누리며 장수예능 대열에 들어섰다.

어른들이 애들 행동거지와 말투에 키득대고, 위안이 아닌 헛웃음을 짓게 되는 구조가 예능의 핵심 래퍼토리가 됐다. 뜻밖의 시청률에 광고까지 불어난 방송사들은 표정관리를 해대며 이들 프로그램에 연말 연예대상을 뿌리고, 출연자들은 은연중에 들어오는 CF 부업에 또한번 덩실 춤을 출 것이다.

어린이들을 위한 수준 높은 프로그램을 만들자는 얘기가 아니다. 어른들을 위한 고상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만들어달라는 주문은 더더욱 아니다. 편안한 주말 저녁시간, 온가족이 TV 앞에 모여 앉는 문화가 사라졌다고는 하더라도 이런 말도 안되는 `어른들의 계산`을 갖고 어린이들을 휘두르지 말라는 얘기다.

이들 프로그램이 의도하는 바는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추측할 수 있는 그 수준이다. 유명 스타와 그 가족들이 실제 생활이나 여행에서 `서울 방학동 김씨네` `경상도 울진 경자네` `경기도 수원 삼형제집` 등 수많은 우리 이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리얼리티(사실성)라는 힘을 입혀 보여주려 한다. 그래서 적잖은 시청자들이 `저럴 땐 우리랑 영락없이 똑 같네`하고 생각들게 만들면 그만이다. 이런 전달 구조에 `상업적 효과`는 철저히 묻힌다.

어린이의 상업적 이용에 이렇게 관대한 나라도 없을 것이다. 아이는 부모가 거두고, 그 슬하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고 바르게 자란다는 가부장적 가르침이 은연중에 전해지기까지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전체 가정의 43% 이상이 맞벌이부부(2013년말, 통계청)인 상황에서 이런 `호사`는 절대 일반적이지 않다.

이렇게 사회적 파급력이 큰 TV 매체의 어린이에 대한 상업적 이용엔 사회도, 정부도 너무나 관대하면서 인터넷 등 새로운 세대 미디어엔 지독히 근엄한 나라도 없을 것이다.

인터넷·스마트폰 등 실생활에서 잘 쓰고, 활용해야할 것들도 이른바 근엄한 기준을 적용하려 든다. 아직 어린이기 때문에, 청소년이란 기준만으로 어른들의 가치에 따라 아이들을 가두고 시키려 한다.

물론 잘 쓰고, 효과적으로 누리려면 교육 받고 학습해야 한다. 제대로 된 규칙을 갖고 올바로 쓸 수 있는 기준을 만들어 보급하고, 실천하도록 하는 것도 사회적 역할이 맞다. 하지만, `이건 안 된다` `이건 하지마라` 식의 일방적 접근으로는 결코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아동·청소년 문제가 심각해질수록 우리나라의 `근엄병`은 도를 더해간다. 지금 우리사회 어른들이 앓고 있는 병이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염되는 게 현대를 사는 아이들에게 가장 치명적이고 무서운 일이란 것을 우리는 감추고 산다.

TV가 만들어내고 있는 아이들의 웃음과 쾌활함, 해맑음, 활기참 등이 일순 누구에 의해 만들어지고, 상업적으로 팔리는 장치라고 느껴진 것이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자유롭고 창의적인 생각과 도전은 가로막은 채 가르치려고만 드는 어른이 문제다.


이진호기자 jho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