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이 핵심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자금을 어떻게 운용하는지에 따라 초기 벤처의 성패가 달려 있습니다. 기업 운영과 연구 개발에 필요한 자금이 제대로 돌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들지 못하면 창업 생태계 구축은 먼 나라 이야기입니다.”
나도진 벤처플랜 대표(49)는 “벤처기업은 기술력과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결국 핏줄과 같은 자금을 제대로 운용하지 못하면 성공하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벤처플랜은 벤처·중기 컨설팅 회사다. 기술을 포함해 기업 현황을 진단해 주고 자금 조달에서 기술 평가·투자 유치·IR 등 주요 기업 업무와 관련해 자문하고 지원해 준다. 필요하다면 직접 투자에 나선다. 나 대표는 쉽게 말해 `벤처 주치의`인 셈이다.
“미국만 해도 규모와 관계없이 기업 경영은 전문가를 활용한 컨설팅부터 시작합니다. 그만큼 중요하게 여깁니다. 반면에 우리는 부수 업무로 생각합니다. 당연히 컨설팅 가치도 높지 않습니다. 특히 경영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벤처기업은 자금 조달에서 투자 유치까지 모든 업무가 생소합니다. 시행착오를 줄이려면 노하우를 갖춘 전문가의 도움이 필수입니다.”
나 대표의 강점은 풍부한 업무 노하우다. 우리은행 미국법인인 우리아메리카뱅크를 시작으로 SK C&C, 벤처기업협회를 거쳤다. 직접 벤처를 창업하고 운영한 경력도 가지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물론이고 창업까지 경험한 흔치 않은 인물이다. 지난해 벤처플랜을 창업해 1인 기업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벤처 컨설턴트` 나 대표가 바라보는 국내 벤처 생태계는 아직도 걸음마 단계다. 박근혜정부가 들어서면서 벤처와 중기에 자금이 몰리고 다양한 정책이 쏟아져 나왔지만 대부분 `수박 겉?기`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벤처기업의 가장 큰 관심사는 자금인데, 수요와 공급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벤처가 창업 후 자리잡을 때까지 7~10년 정도를 볼 때 고비마다 필요한 자금 수요가 다릅니다. 대략 초기 창업할 때 많은 자금이 필요하고 주춤했다가 `죽음의 계곡` 당시에 추가 투자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벤처 투자 대부분은 상장하기 전 3~4년 전에 집중됩니다. 그때는 대규모 투자가 필요없습니다.”
이 때문에 최근 정부가 중소기업을 위해 정책 자금을 지원하지만 현장에서는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더구나 창투사와 금융권 같은 민간 자본은 여전히 복지부동 상태라고 덧붙였다. 그나마 엔젤에 기대를 걸고 있는데 이마저도 초기인데다 조건이 까다로워 위험 부담이 큰 20·30대보다는 자금력과 휴먼 네크워크를 갖춘 30·40대에 몰려 정책 취지가 퇴색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나 대표는 “벤처 인수합병(M&A) 시장도 할말이 많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수합병은 창업 선순환을 위한 강력한 지렛대지만 국내에서는 좀처럼 시장이 열리지 않고 있습니다. 정보 불균형 문제도 있지만 관련 법이 인수자 쪽에 기울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인수기업 입장에서는 기업 자체를 인수하는 것보다 기술 혹은 인력만 빼돌리는 게 훨씬 경제적입니다. 인수합병할 동기가 부족합니다. 미국에서 인수합병이 활발한 것은 과징금이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자칫 중소기업에 기술과 인력만 빼간다면 기업 자체가 휘청할 수 있을 정도로 엄격합니다. 국내에서도 충분히 고려해볼 만한 부분입니다.”
나 대표는 “벤처 생태계 활성화를 총론 차원에서 누구나 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법과 제도, 정책에서 미흡하기 때문에 지지부진하다” 며 “지금은 거창한 정책 구호가 아닌 작지만 실질적인 개선책을 실행할 때”라고 강조했다.
사진=박지호기자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