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한국은 세계 여러 국가와 연합해 다국적 펀드를 운용해야 합니다. 창업 생태계 조성에는 자금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다국적 펀드가 보유하고 있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스타트업을 세계 무대에 데뷔시켜야 합니다.” 이스라엘을 창업국가로 만든 장본인 에후드 올메르트(Ehud olmert·67) 전 총리는 지난달 19일 텔아비브 집무실에서 기자와 만나 한국 창업 생태계 조성을 위해 새해 정부가 해야할 일을 정확히 짚어냈다.
올메르트 전 총리는 1990년대 산업통상노동부 부총리를 역임하던 시절 경험을 언급했다. 당시 그는 수석과학관실(CSO)을 신설해 다양한 국가와 글로벌 펀드를 함께 운용했다. 정부가 CSO 소속 전문가를 통해 스타트업을 선별해 10만달러가량 초기 자본을 수혈하는 형태였다. “이스라엘은 미국과 30년간 BIRD 펀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간 이스라엘과 미국 조인트벤처에 수천만 달러를 투자했지요. 나스닥에서 1200억달러에 거래되는 체크포인트가 대표적입니다. 이런 방식이 거듭되면서 상생 생태계가 조성된 것입니다.”
한국에도 시사점이 충분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코리아벤처투자센터와 해외진출 펀드를 조성해 해외로 진출하는 기업을 적극적으로 돕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친 것과도 직결된다. 올메르트 전 총리는 이스라엘이 글로벌 대기업에 수억, 혹은 수십억달러에 매각됐다는 소식이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들려온다면서 이렇게 유입된 자금은 다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데 사용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과 한국 업체가 협력할 부분도 상당히 많다고 언급했다. “이스라엘에는 몇 십 년 전에 유치한 다국적 펀드가 활발하게 스타트업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요즈마펀드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스타트업이 개별적으로 실리콘밸리에 문을 두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스라엘 스타트업과 조인트벤처를 형성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과 이스라엘은 협업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론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스라엘 창업 생태계를 벤치마킹한 한국 창조경제에도 관심이 높다. “이스라엘 창업 생태계는 고급 인력과 정부 정책지원이 잘 결합해 시너지를 낸 결과입니다. 한국에서도 관련 정책이 적극적으로 생기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정부가 청년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일방적으로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혁신을 일으킬 수 있도록 동기부여 공간을 창조해야 겠지요. 남은 건 한국 청년들의 `후츠파` 정신입니다.”
한국 정부가 지난해 연대보증 등 창업 생태계 걸림돌을 하나씩 제거하며 초석을 다졌다면 올해는 도약을 위한 적극적인 정책을 펼쳐야하는 시기라는 조언이다. 청년들도 이에 걸맞게 `뻔뻔하고 당돌한(후츠파)` 정신을 가지고 창업에 임해야 한다는 것. 장유유서와 유교적 전통에 갇히지 말고 적극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20대 열정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올메르트 전 총리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이 필요하다”며 “한국 청년은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몇 안되는 민족 자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적극적으로 자신이 잘 하는 것을 찾아 새로운 것을 창조할 때 미래도 있다”고 덧붙였다.
※에후드 올메르트 =2006년부터 3년간 이스라엘 12대 총리로 재직하면서 글로벌펀드 유치와 연구개발(R&D) 등의 창업 인프라를 체계적으로 조성하고 뿌리내리게 한 인물. 30년간 의회 활동과 두 차례의 예루살렘 시장, 산업통상노동부 장관 등 활발한 정치인생을 살아오면서 은퇴 후에는 테크업체 지주회사 자문위원, 컨설팅업체 회장 등을 역임하고 있다.
허정윤기자 jyhu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