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전력산업구조개편 `잃어버린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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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장군이 점점 위세를 떨치고 있다. 올 겨울은 유난히 한파가 잦을 것이라는 소식에 전력당국의 한숨이 깊어간다.

원전은 툭하면 멈추기 일쑤고 전력수요는 줄어들 줄 모른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세계적으로도 가장 값싸고 질 좋은 전기를 마음껏 사용한 우리 국민에게 지금의 상황은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전문가들은 전력난 해법으로 똑똑한 전력망 정도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스마트그리드(Smart Grid)를 제시한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에도 포함됐다. 전력계통이 스마트해지면 정확한 수요예측과 공급능력이 높아진다. 불필요한 예비전력 확보를 줄일 수 있어 전기요금을 낮출 수 있고 합리적 소비를 유도할 수 있다. 나아가 차세대 분산형 전력시스템 구축을 앞당겨 에너지와 통신의 경계를 허무는, 이른바 융합형 산업 탄생이 가능하다. 일자리와 부가가치 창출은 덤이다.

하지만 기대만큼 산업의 문은 열리지 않고 있다. 스마트그리드라는 산업적인 명분과 기술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혁신이 산업에 받아들여지고 이를 수용하려는 기득권의 이해와 협력의 장벽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전기요금이 가장 큰 장애요소다. 지금도 월 5만원이면 편리하게 전기를 사용할 수 있는데 굳이 비싼 절전제품이나 수 십 만원이 넘는 스마트미터(AMI)를 설치할 이유가 없다. 가계비에 예민한 주부들은 정부가 알려주는 실시간 전력요금 정보가 필요 없는 것과 같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한전이 추진하는 `2000만호 AMI 보급사업` 역시 무의미하다.

정부가 틀어쥐고 있는 `송·배전-판매`의 단방향 전력망 구조도 발목을 잡는다. 스마트그리드는 송배전 시설과 소비자를 정보통신망으로 연결하는 양방향 시스템이다. 전문가들은 한전의 전력판매 독점 구조에서는 전력소비의 효율화를 꾀할 수 없다고 말한다.

맞는 얘기다. 스마트그리드 한 축인 국내 전기차 충전인프라 시황이 지지부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전이 2010년 전기차 전용요금제를 내놓았지만 전력을 판매할 소매상이 없어 무용지물이다. 제도만 존재할 뿐 이를 실행할 주체가 없는 셈이다.

이동통신 시장의 MVNO처럼 전력시장에도 재판매 환경이 구축돼야 일자리와 부가가치 산업이 만들어진다. 과거 정통부가 위피(WIPI)를 앞세워 국내 이동통신 시장을 `우물안 개구리` 신세로 만든 경험을 되풀이하면 안 된다.

따지고 보면 문제해결의 핵심은 전력산업구조개편에 있다. 하지만 이 논의는 2004년 이후 사실상 제자리걸음이다. 40년 넘게 쌓아온 수직독점의 비효율과 폐해를 인식하고 있지만 내로라하는 에너지 전문가들은 입을 닫았고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속앓이 중이다.

지금의 우리나라 전력 소비 추세라면 설비용량 1억㎾ 시대가 머지않았다. 정치논리에 전력요금이 묶이면 한전의 적자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서 전력민영화가 어렵다는 논리라면 스마트그리드 분야만이라도 전력재판매가 이뤄질 수 있는 길을 터줘야 한다. 그래야 민간투자를 유인할 수 있고 해외투자가 추진될 수 있다. 걸어온 것 보다 가야할 길이 더 멀다. 숲을 보지 못하고 눈앞의 나무만 본다면 에너지안보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김동석 그린데일리 부장 ds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