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국제표준 대응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자동차 업계 `맏형`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완성차는 물론이고 1차, 2차 부품 협력사까지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27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가 ISO 26262, 오토사(AUTOSAR) 등 스마트카 관련 핵심 국제표준에서 자체 기준을 제시하지 않아 협력사들이 대응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ISO 26262는 지난 2011년 말 제정된 자동차 기능안전 국제표준으로, 안전과 관련된 전장부품은 반드시 이 표준을 따라야 한다. 이는 기능안전 구현을 위한 최소한의 요건을 규정한 것이어서 통상 완성차 업체는 강화된 요건을 적용한 자체 기준을 마련, 협력업체에 제시한다.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다. 업계에선 이를 `기능안전 요구사항(FSR)`이라 부른다. 부품 업체는 완성차 업체가 제시한 구체적 요구사항을 토대로 부품을 개발하게 된다.
문제는 현대차가 아직까지 기능안전 요구사항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부적으로는 이를 작성했으나 외부에 공개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ISO 26262를 준수하지 않은 차량은 사고 발생 시 제조물 책임(PL)법에 의해 천문학적인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 해당 부품을 제조한 업체는 물론이고 완성차 업체까지 존립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때문에 글로벌 자동차 업체는 ISO 26262 대응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이미 BMW와 폴크스바겐, 다임러, GM, 르노닛산, 도요타 등 주요 업체가 준비를 마쳤다. 실제로 폴크스바겐은 국내 부품사에 주문을 의뢰할 때 50페이지가 넘는 구체적 FSR를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전문가는 “현대차가 내부적으로 만들어 놓고도 공개를 못하는 건 자신감이 없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차량 SW 국제표준인 오토사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현대차가 구체적인 적용 로드맵을 공개하지 않아 업계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 주요업체는 물론이고 일본과 중국이 국가적 차원에서 오토사 대응을 지원하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한 부품업체 연구소장은 “부품 업체들이 오토사에 대응하기 위해 엄청난 비용과 인력을 투입하고 있는데 현대차 로드맵이 나오지 않아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면서 “비밀주의를 버리고 정확한 신호를 업계에 줄 때”라고 호소했다.
자동차 산업에 정통한 한 대학 교수는 “표준이란 것은 선두 업체가 공개하고 협력업체들이 따라오도록 해야 하는 것인데 현대차가 움직이지 않으니 아무도 움직이지를 않는다”면서 “지금이라도 국제표준 대응 현황을 공개하고 공동 대응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주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