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Photo Image

해방을 보지 못하고 숨을 거둔 시인 이상화는 절절한 가슴으로 노래했다.

이 들녘 저 들녘 떠도는 봄기운이 일제의 강점으로 빼앗긴 우리 땅에 내려앉지 못하는 현실을 피 토하듯 한탄한다. 몸과 마음을 둘러싼 환경·시간적 요인이 현재의 조건을 얼마나 깊게 규정할 수 있는지를 이 처럼 아름답게 표현한 시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후 수많은 평론이나 글에 제목으로 인용되거나 표현으로서 패러디됐다.

게임업계 최대 잔치인 대한민국 게임대상 시상식과 지스타가 일주일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시장 분위기는 싸늘히 식어있다. 네티즌들이 수상작에 표를 던지는 온라인 투표 분위기는 요며칠 뜨겁지만, 업계 내부는 꽁꽁 얼어붙었다.

시적 은유 없이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우리 게임 없이 1년 이상을 외국 게임 주도로 국내 시장이 돌아가다 보니 주눅이 들어도 바짝 들었다. `해봐야 안 된다`는 열등감과 패배의식으로 개발 프로젝트는 서랍 속에서 썩어 들어간다.

산업과 함께 나고 잔뼈가 굵은 업계 인사들조차 온라인게임 태동 20년 동안 이처럼 외국 게임이 지배한 적은 없었다고 말한다. 일본과 중국에 우리 유력 게임업체들이 팔려나갈 때도 느껴지지 않았던 열패감이 산업을 뒤덮고 있다.

그간 여러 차례 외국게임이 판을 휩쓸고, 독주를 하려하면 쟁쟁한 국산 게임이 나와 시장분위기를 뒤집고 또 다른 게임을 만들도록 추동하는 구조가 언젠가부터 완전히 사라졌다. 투자는 식고, 개발자들은 다른 쪽에 곁눈질 한다.

그 바람에 스마트폰 대중화를 통해 모바일게임이 커졌다고는 하지만, 한국 게임산업 뿌리인 온라인게임의 `부재`는 산업의 나무 전체를 흔들리게 하고 있다.

이게 산업 내부의 현실이라면 둘러싼 주변은 어떤가.

산업의 존재 이유 조차 부정하는 탄압에 가까운 규제와 법적 장치가 게임산업을 옥죄고 있다. 중독의 복합적 원인 조차 규명하지 않은 채 게임이 그 이유라고 지목했다. 호환, 마마 같은 질병으로 게임을 다스리겠다는 군주적 발상이 21세기 지금 먹히고 있다. 오늘도 동남아시아로, 중국으로 남미로 한국 게임을 팔러 다니는 게임업체 마케터들에겐 주홍글씨보다 더한 낙인이 찍혔다.

한국 게임을 사겠다고 하는 외국 회사를 우리나라에 불러 장터를 만들어준 지스타는 마약을 팔고, 질병을 전파하는 국제행사란 말인가. 대통령이 주는 상을 받는 올해 대한민국 게임대상작은 기뻐하란 말인가, 통곡하란 말인가.

집권 여당 대표는 게임의 산업적 가치까지 부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게임의 긍정적 에너지는 키우겠다고도 했다. 그런데, 게임을 중독과 질병으로 등치시켜 놓은 상태에서 찾아낼 수 있는 가치나 에너지가 티클 만큼은 될지가 의심스럽다. 오히려 `가치나 에너지가 없기만 해봐라`는 경고로 들린다.

한국 게임산업은 중국, 일본은 물론 미국·유럽이 부러워하는 훌륭한 이용자 문화 속에 자라고 컸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인터넷, 모바일 사용자 문화와 힘이 세계적 혁신과 서비스 창출로 이어졌다. 이 처럼 세계가 부러워하는 이용자들이 중독으로 규정하지 않는 이상, 게임은 중독물이 아니다.

이제 겨울의 시작이지만, 봄은 바로 다음 계절로 와있다.


이진호기자 jho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