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재난망"...국민안전 내팽개친 국정감사

정부 무관심 속에 표류 중인 국가재난안전통신망(재난망) 사업이 국정감사에서도 외면받으면서 올해는 물론이고 사실상 내년에도 전면 중단될 전망이다. 민생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마저 국민안전을 외면하면서 국민이 다시 대형 참사의 살얼음판을 걷게 방치될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국회에서조차 재난망 논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재난망 사업이 사실상 폐기 수순을 밟을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달 14일 시작된 국정감사 완료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지금까지 재난망 관련 질의나 답변은 한 건도 이루어지 않았다.

박남춘 의원(민주당)이 국감 직전 보도자료에서 “재난망 사업 지연으로 경찰청과 소방방재청이 별도 예산으로 교체한 무전기 예산만 470억원에 이른다”며 혈세 낭비를 언급한 것이 유일한 재난망 관련 지적이었다.

재난망 사업은 올 상반기 한국산업개발원(KDI)에서 예비타당성 조사에 돌입한 이후 10월 현재까지 중간보고서조차 나오지 않았다. 예타 결과가 나오지 않아 사업 시작 해인 내년 예산 반영은 물론이고 전체 로드맵도 수립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사업이 10년째 연기되며 일선 소방서와 경찰서 등에서는 통신 장비 노후화로 재난 재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이 때문에 이번 국감에서 지연되는 재난망 사업이 질타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다른 정치적 이슈에 묻혀 민생이 내팽개쳐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부 의원은 재난망 관련 자료와 지적사항을 준비했지만 여야 공방 등 다른 사안에 밀려 질의조차 하지 못했다.

민주당 의원실 한 비서관은 “안전행정위원회 국감에서 재난망 사업 추진 방식 질문과, 사업 자체가 표류하고 있어 조속한 추진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할 예정이었지만 다른 사안에 우선순위가 밀렸다”며 “11월 확인 감사에서 다시 부각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안행위 국감이 정쟁(政爭)으로 치달으며 재난망 등 실제 감사를 벌여야 할 부분은 소홀했다는 자성도 나왔다. 지난 14일 시작된 안행위 국감은 대부분 여야 기싸움으로 파행을 거듭했다.

또 다른 의원실 관계자는 “안행위 국감이 NLL 대화록 유출, 대화록 폐기, 김용판 전 경찰청장 증인선서 거부, 김문수 경기도지사, 박원순 서울시장 실정 등 주로 정쟁에 관련된 주제를 가지고 공방을 벌이다 보니 정작 실무에 관한 감사를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표시했다.

국감조차 재난망을 외면하는 사이 관련 현장 어려움은 가중됐다.

경찰·소방 등 321개 재난필수 기관 통신망을 연동하는 약 1조원 규모 국가사업이지만 차일피일 미뤄지며 관계기관은 2010년 이후 노후 장비를 수리해서 쓰거나 소규모 예산을 투입해 `땜질 식`으로 교체하는 등 어려움을 겪는다. 정부가 재난망 사업 통일성을 이유로 자체 고도화 작업을 사실상 막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재난이나 사고 발생 시 안정적인 통신망을 확보하지 못해 사업이 지연될수록 국민 안전이 위협받는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내년 자체 통신망 고도화 사업을 검토 중인 지방 기관 한 관계자는 “예타 최종 결과를 봐야겠지만 이미 구축된 VHF, UHF가 제 기능을 못해 어떤 식으로든 교체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크다”고 설명했다.

재난망 솔루션 공급 업체 한 관계자는 “최근 2~3년 현장 불만이 급증하고 있다”며 “특히 내구연한을 넘긴 장비를 운용하는 곳은 유지보수도 어려워 장애가 나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재난망 사업이 진도를 내기 위해 정부가 사업 기준, 방향성과 추진 동력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배성훈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박사는 25일 열린 한국지역정보학회 추계학술 대회에서 “재난망 사업이 경제성 논리에 막혀 10년째 표류 중”이라며 “기술 방식의 경제타당성을 따지기보다 표준운용절차(SOP) 등 운용전략을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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