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R&D의 미래]<5·끝>캐즘을 넘는 새로운 에너지 전환의 시대

에너지기술평가원 안남성 원장(nsahn@ketep.re.kr)

20세기 초 기술혁신 개념을 제시한 조지프 슘페터는 “마차는 아무리 개량해도 기차로 변할 수 없다”라며 마차 시대 종언을 선언했다. 당시 주력 교통수단인 마차가 아무 곳이나 다닐 수 있는 편의성이 있는 반면 자동차나 기차는 도로와 철로를 깔아야 하는 막대한 초기투자 비용이 필요했다. 하지만 내연기관과 제철공법에서 기술혁신은 자동차와 기차의 성능 대비 가격 경쟁력을 가져왔고 이는 새로운 교통시스템으로 전환을 가속화했다. 사회시스템 전환 원인을 기술혁신으로 파악한 슘페터 통찰력은 21세기 우리가 당면한 에너지시스템 전환에도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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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올림픽으로 불리는 세계에너지총회(WEC)가 대구에서 열려 110여개 국가, 6000여명이 참석했다. 대구 총회에서는 한국 정부와 WEC가 함께 미래 에너지 전환의 비전을 담은 `대구선언문`을 채택해 우리나라 에너지 분야의 국제 위상을 재확인했다. 대구선언문은 에너지시스템 개선을 통한 에너지안보, 국가 네트워크를 형성을 통한 에너지 형평성, 합리적 에너지 믹스를 통한 지속 가능한 성장이 골자다. 안정적 시스템을 구축함에 있어 스마트그리드, 에너지저장 시스템 등을 포함한 혁신적 기술의 중요성과 RD&D 투자 확대 필요성을 인식했다는 점에서 실천적 합의를 도출했다고 볼 수 있다.

에너지 기술이 사업화되는 공간은 우리 경제와 사회를 지탱하는 시스템이다. 새로운 기술이 기존 시스템에서 생존해 성장하기 위해서는 중화학 공업기반의 산업, 중앙 집중적 전력공급, 불안정한 전력수급이란 현안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에너지 기술이 초기 시장에 진입해 확산되는 이른바 사업화 과정이 실로 어려운 여정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에너지기술평가원(KETEP) 조사에 따르면 에너지 R&D를 통해 연구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성공률이 90% 수준인 반면, 해당 연구결과물이 시장에 적용, 사업화되는 비율은 28%에 그친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제프리 무어 교수는 이를 `캐즘(단절)`으로 정의했다. 이른바 새로운 기술이 초기 시장을 창출하지만, 광범위한 거대시장으로 확대되는 과정에 커다란 단절에 맞닥뜨리게 된다는 것이다. 에너지R&D는 대중의 행동 패턴과 라이프스타일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 따라서 국민적 수용성 확보가 필수적이다. 연구개발 이후 사업화를 진행함에 있어 대규모 초기 투자비가 필요할 뿐 아니라 지속적인 성능 대비 가격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에너지 기술은 기존 산업 생태계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하기 마련이다.

제프리 무어 교수는 캐즘을 넘는 해법으로 두 가지를 제안했다. 먼저 거대 시장의 고객이 실용주의자임을 인식하라는 것이다. 고객은 혁신적 기술 뿐 만 아니라 다양한 서비스를 통해 기대가치를 충족받기를 원한다. 애플은 스마트폰이라는 전혀 새로운 방식의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했고 이것이 거대 시장에서 고객가치를 충족시켰다. 흔히 기술을 개발하는 전문가는 어떻게 하면 최고의 기술을 구현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하지만 기술을 개발하는 사업가는 사용할 사람을 관찰 한다. 사용할 사람이 가장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한다.

둘째는 거대시장을 세분화해 니치 시장을 공략하는 것이다. 확실하게 공략 가능한 니치시장을 선택하고 집중 투자한다. 이를 통해 인접한 시장으로 계속 확대하는 전략이다. 마치 볼링에서 한 개 핵심핀이 넘어져 다른 핀을 연쇄적으로 넘어뜨리는 것과 유사하다.

에너지 기술이 캐즘을 넘어 새로운 에너지 전환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시장에서 고객을 만족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친환경, 지속가능성이라는 개념적 구호는 고객 수요 의지를 자극하지 못한다. 에너지기술이 적용된 친환경, 지속가능한 에너지 서비스가 소수 시장에 머물지 않기 위해서는 사람에 대한 관심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정부도 R&D와 기술사업화, 시장조성을 위한 보급과 조달 등 다양한 정책 간 상호 연계를 강화해 에너지기술의 자생 기반을 갖추어야 한다. 지금 슘페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에너지전환의 `기차`, 즉 R&D를 통한 새로운 에너지시스템의 구축에 망설임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작은 사람과 세상에 대한 관심과 소통에서 나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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