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과학기술계 연구자의 도전성과 모험성 등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 2010년 도입해 운용 중인 성실실패 인정 제도가 `있으나 마나`한 것으로 드러났다.
24일 전자신문이 민병주 의원(새누리당)과 한국연구재단 및 25개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성실실패인정제 시행여부 및 판정결과를 분석한 결과 제도 시행 3년간 성실실패 인정 사례가 단 한 건도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래창조과학부 자료 분석결과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생산기술연구원, 국가보안기술연구소 등 전체 출연연 25곳 가운데 76%인 19개 기관은 제도자체를 시행하지 않고 있다.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 등 평가기관이 이 제도를 적용한 실적도 전무했다.
또 성실실패 인정제를 도입한 원자력연구원과 생명공학연구원, 천문연구원, 전기연구원, 식품연구원, 김치연구원 등 6개 기관에서도 실패과제를 대상으로 성실실패 인정 여부를 판정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다만, 지난 2010년 한국연구재단이 `모험연구사업`에 이 제도를 시범 적용해 성실실패를 판정한 사례가 4건 있었다.
한국연구재단이 지난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년간 시행한 모험연구사업 과제 수는 총 191건에 예산은 213억원이 지원됐다. 이 가운데 실패평가가 전체의 2%를 갓넘긴 4건이 나왔다. 재단은 곧바로 성실실패판정위원회를 열어 4건 모두를 성실실패로 인정해 구제했다.
과학기술계는 국가연구개발사업 연구과제 평가에서 열심히 일하고도 `실패`판정을 받으면, 과제참여 제한과 연구비 환수조치 등 제재를 받기 때문에 각 평가에서는 웬만하면 미흡 판정을 주지 않는다. 이 때문에 과학기술계에서는 `과제 90% 이상 성공`이라는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신화`가 이어져 왔다.
실제 미래부와 KISTEP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R&D 성공률은 2011년까지만 해도 97%를 넘었다. 지난해에는 88%였다.
이로 인해 과학기술계는 과학기술 연구자들이 평가받는데 유리한 방식의 연구만을 진행하는 등 도전적인 연구시도가 거의 없는데다, 과제 성공률이 다른 선진국과는 달리 평균 90%를 넘는 등 현실과 동떨어진 연구결과가 많아 성실실패 용인 시스템을 지속 요구해 왔다.
이 제도는 지난 2001년 당시 산자부가 산업기술 연구부문에 이 제도를 처음 도입했다. 이후 R&D 실패에 대한 면죄부 논란 등을 겪다 주저앉았으나 지난 2010년 다시 공론화되면서 제도시행이 일부 이루어졌고, 현재 법제화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민병주 의원은 “지난 8월 과학기술분야 연구자의 `성실실패`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내용을 담은 과학기술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해 놨다”며 “법으로 이 제도가 안정화되면 상당부분 인식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