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분석]창업자 연대보증, `필요악 vs 필악` 논란

폐지 요구 거센 창업자 연대보증

창업자 연대 보증을 둘러싼 벤처업계 폐지 요구가 거세다. 벤처업계는 연대보증 제도는 모든 창업자를 잠재적 모럴 헤저드로 간주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회사가 부도나면 법률적 재판을 거치지 않고 무조건 개인 재산 몰수에 들어가, 성실 실패자에 대한 재기 기회를 원천 봉쇄한다는 것이다. 창업자 연대보증제도가 상존한다면 현재의 창업 장려 정책이 10년 내 수십만 명의 신용불량자를 양산하는 결과를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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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업계뿐 아니라 정부와 정치권, 보증기관 조차도 창업자 연대보증제도 폐해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이를 어떻게 개선할지에 대한 각론으로 들어가면 입장이 갈린다. 현실적으로 연대보증이 기업가 정신을 억누르고 잠재적 신용불량자 양산의 우려가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폐지하면 발생하는 폐해 또한 만만치 않다는 주장이다.

정부와 보증기관 등은 창업자의 도덕적 해이와 추가 손실로 인한 재원확보 어려움, 보증기관들의 관리 강화로 발생하는 보증지원의 경색 등을 우려한다. 대안마련 없는 폐지는 더 큰 혼란과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는 지적이다.

논란은 지난 24일 창조경제연구회가 `창업자 연대보증과 국가편익`이라는 주제로 개최한 제1회 창조경제연구회 정기포럼 참석자들 간에도 극명하게 나타났다. 금융위원회와 기술보증기금 등 정책을 집행하는 정부기관에서는 신중한 접근을 강조했고, 벤처기업협회 등 업계 관계자들은 수십 년 간 이어진 연대보증의 폐해를 강조하며 조속한 폐지를 주장했다. 창업자 연대보증 폐지와 현실적 유지 필요성을 주장하는 양측의 쟁점을 정리한다.

◇실패의 무관용, 수십조원 국부 손실

2012년 소호협회가 조사한 청년 희망 직업 조사에 따르면 공무원·공기업(60%)과 대기업(30%) 취업이 90%를 차지했다. 반면 벤처 창업은 3%에 불과했다. 벤처기업가가 1위를 차지하는 미국과 대변된다. 벤처 붐이 한창이던 2000년 50%에 달했던 우리나라 창업 희망자가 3%로 감소하는 사이 스웨덴 같은 국가는 30%에서 45%로 증가한 것과 대조적이다. 기업가 정신의 추락은 실패의 무관용에 기인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민화 KAIST 교수는 “실리콘밸리는 평균 2.8회 창업하지만 한국은 한 번의 실패로 재도전의 기회가 원천 봉쇄된다”며 “가장 큰 이유는 창업자 연대보증으로 인한 신용불량의 공포”라고 강조한다.

아이디인큐 오픈서베이가 최근 대학생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대학생의 창업 인식에 관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신용불량의 위험이 사라지면 창업하겠다는 의시가 10%에서 66%로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벤처창업이 현재 2000개에서 4배 증가할 경우 최대 102조원, 최소 42조원의 국부가 창출될 것이라고 한다. 법인세와 소득세로 회수할 수 있는 국세환수도 수조원으로 추정된다.

반면 창업자 연대보증으로 국책보증기관이 회수하는 금액은 총 보증금액의 0.5% 수준인 3000억원에 불과하다. 3000억원 회수를 위한 무차별 연대보증이 수십조원 국부 창출 기회를 상실로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가 창업활성화를 위해 장기적으로 엔젤과 M&A 활성화 등의 필요성을 언급하지만, 먼저 창업자 연대보증 폐지가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남민우 벤처기업협회장은 “박정희 정권 시절에도 지금 대기업을 육성하면서 많이 실패했지만, 많은 기회를 줬기 때문에 현재 우리 경제의 원동력이 됐다”고 재도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연대보증제도가 기업은 망해도 기업가는 산다는 모럴 헤저드는 잡았지만, 우리 창업 생태계를 황폐화시키고 창업을 망설이게 하는 원인이 됐다”며 이제는 바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벤처금융은 대출(보증)보다 투자가 원칙

금융정책을 담당하는 금융위원회의 생각은 이와 상반된다. 이미 연대보증에 대한 폐해를 인지해 인정범위를 지속적으로 축소해 왔고, 현재 남아 있는 연대보증은 법인사업자의 실질 책임자 1명에 국한된 것만 남아있다고 강조한다. 벤처업계에서 주장하는 실질 책임자(창업자)에 대한 연대보증마저 폐지하면 책임경영 부재, 모럴헤저드는 물론이고 대출(보증) 기관의 업무위축으로 오히려 창업자들의 자금난이 심해질 것이라고 진단한다.

궁극적으로 창업자에 대한 연대보증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에는 공감하지만, 이에 대한 전제조건을 요구한다. 우선 대출(보증) 기관이 충분한 검증시스템(심사능력)을 갖춰야 한다. 또 보증사고 증가에 따른 충분한 재원 마련도 뒤따라야 한다. 더불어 기업들의 성숙한 도덕성과 투명한 지배구조도 전제돼야 한다.

김용범 금융위원회 정책국장은 “몇 가지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부분이 갖춰졌다고 보기 힘들다”고 진단했다. 연대보증 폐지로 인해 일부 기업평가가 안 좋은 기업은 5~10배까지의 보증료 부담이 늘어나는 등 보증료 차별화가 불가피한데, 이를 기업들이 용인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어 김 국장은 창업자 연대보증제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겠다고 전제한 뒤 “대출과 융자는 표준화된 기업에 필요한 제도인데, 벤처는 이와 어울리지 않는다”며 “보다 근본적인 대책은 연대보증 폐지가 아니라 투자(모험자본) 분야를 어떻게 늘려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종만 기술보증기금 이사도 책임경영이 이뤄진다는 전제하에 창업자 연대보증제도 개선에 대한 부분은 공감하지만, 폐지에 대해서는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기업의 금융기관 이용(대출)에 있어 작용하는 순기능마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다. 그는 “(현실적으로) 연대보증제도가 폐지되면 금융기관이나 보증기관 근무자가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보증을 보수적으로 운용할 수 밖에 없고, 이는 오히려 장기적으로 창업활성화의 저해요인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보와 신보 보증금액이 65조~80조원 정도 되는데, 연대보증을 폐지하면 수요가 몰리고, 부실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다. 사고율이 몇 %만 올라도 수조원의 정부 부담이 늘어난다는 지적이다. 보증금리 인상에 대한 문제 등 다양한 부작용이 뒤따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박 이사는 “현재 창업자 연대보증제도는 구상권 행사보다 기업을 올바르게 경영하라는 취지가 강하다”며 “이미 기술우수 기업 등에 대해서는 연대보증 면제, 재기지원제도 등 다양한 보완책을 마련해가고 있다”며 전면적인 폐지에 대한 우려감을 나타냈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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