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세계 1위 당당함을 보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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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통신기술(ICT) 분야 기업이 손꼽아 기다리는 시기가 있다.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와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가 열리는 연초와 국제가전전시회(IFA)가 열리는 9월이다. 첨단 ICT 동향과 경쟁사 신제품 전략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2003년 폐지되기 전만해도 세계 최대의 ICT 전시회로 이름을 날린 컴덱스나 지금은 규모가 축소된 세빗도 ICT 전문가가 몰리는 대표적인 국제 전시회였다. 컴덱스에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게이츠나 애플의 스티브잡스, 시스코의 존 체임버스 등 ICT 거물이 단골 기조연설자로 나왔다. 이들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 한마디는 ICT 업계의 법칙이자 새로운 트렌드가 됐고 많은 기업의 나침반 역할을 했다.

과거에는 컴덱스나 세빗 등 대형 전시회에 맞춘 시찰단 모집 프로그램을 비즈니스모델로 한 여행사도 많았다. 산업과 관광을 결합한 융합형 모델로 각광받았다. 세빗이 열리는 독일 최대 전시장은 대도시인 베를린이나 본이 아니라 지방 소도시인 하노버에 있다. 세빗이나 하노버 메세가 열리는 기간 하노버는 전시회 포스터와 광고물로 도배되다 시피하고 관련 부대행사로 넘쳐난다. 도시 전체가 축제 분위기다. 하노버는 전시산업으로 230억유로와 연간 25만여 명의 일자리창출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전시회 유치가 가져다주는 경제효과 외에 눈에 보이지 않는 효과도 상당하다. 전시장을 찾는 사람들은 단순히 첨단 기술 트렌드만 보고 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알게 모르게 지역 문화를 보고 듣는 과정에서 막연하나마 호감을 가질 수 있다. 하노버가 IT전시회의 중심인 유럽에서도 핵심 지위를 차지하는 이유다.

전시산업이 과거만 못하다지만 종합 서비스산업이며 차세대 먹거리산업임에 틀림없다. 국내에서도 하노버 모델이 충분히 가능하다. 삼성전자·LG전자 등 ICT 분야에서 세계 1,2위를 다투는 기업이 있고 안정된 정보통신 인프라와 각종 부대시설도 갖췄기 때문이다. CES나 MWC·IFA 등에서도 관람객은 삼성·LG 등이 발표하는 신제품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굵직한 콘퍼런스에서도 삼성·LG를 비롯한 국내 ICT 기업 CEO가 기조연설자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제 세계 ICT 분야에서는 삼성·LG의 일거수일투족에 반응한다. 과거 MS나 IBM·시스코·야후 CEO가 그랬듯이 삼성·LG CEO 한마디 한마디가 법칙이자 트렌드다.

지금까지 우리 기업은 시장이 있는 미국이나 유럽 유명 전시회에 참가해 첨단제품을 선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굳이 해외에 가지 않더라도 세계 1등 제품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시대라는 점이다. 한 해 수백억원에 이르는 예산을 쓰고 해외 로드쇼에 나가는 대신 국내 전시회에서 신제품을 발표하면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관람객 유치에 따른 경제효과는 덤이다.

국내에도 봄·가을로 월드IT쇼(WIS)와 전자정보통신산업대전(EIF)이라는 대형 ICT 전시회가 열린다. 명실 공히 세계 1위 기업을 보유한 국가에서 개최하는 ICT 전시회인데 CES나 IFA에서 보던 제품으로 재탕하는 모양새는 보기 그렇다. 처음엔 힘들겠지만 WIS와 EIF에 가면 세상을 이끌어갈 신기술을 만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


주문정 논설위원 mjjo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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