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1주년 특집]창조, 사람에게 묻다
부모님은 20년 전 일본에서 작은 김치가게를 열었다. 당시 아버지가 일하던 직장 직원들이 어머니가 차린 남동생 돌잔치 음식을 맛보고 권한데 따른 것이었다. 김치가게는 대박이 났고 한국식 가정요리 전문점 `처가방(사이카보)`으로 이어졌다. 지금은 식당, 식품점을 포함해 일본 내에 50여 매장이 있다.
20년이 지난 지금 한국에서는 딸이 반대로 `도쿄 사이카보`라는 일본요리 전문점을 운영 중이다. 일본에서는 한국 음식으로, 한국에서는 일본 음식으로 역진출한 기업 `영명`의 얘기다. 일본 사업을 오영석 영명 대표가 일궜다면, 한국 사업은 그의 딸 오지선 부사장이 이끌고 있다.
오 부사장은 “요리는 진정한 글로벌 시대에 접어들었다”며 “어느 나라를 가도 어느 음식이든 먹을 수 있는 시대에 맞춰 사업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도쿄 사이카보는 지난달 19일 본점 개점 4주년을 맞았다. 물론 한국 안착이 쉽지만은 않았다.
`스끼다시`로 통칭되는 한국식 일본 요리가 아닌 정통 일식을 고집했지만 처음엔 반응이 좋지 않았다. 힘들었지만 절대로 맛이라는 기본은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단순히 음식을 파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공유하는 공간을 만들었다.
오 부사장은 “우리가 꾸준히 노력하니 손님들과도 맞춰지더라. 이제 점점 빛을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오 부사장은 일본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낸 후 한국에서 서울대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했다. 도쿄 사이카보 부사장 외에 요리연구가로도 활동 중이다. 자연스레 한식의 세계화에도 관심이 많다.
그는 “아직 해외에 한식 이미지가 확실하게 정립되진 않았지만 좋은 식자재를 사용하고 발효 식품이라는 강점은 분명하다”며 “한식의 세계화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확신했다.
오 부사장은 기회가 닿으면 한국과 일본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단 무턱대고 서두르지는 않을 생각이다.
여타 30대 초중반의 젊은 경영자와 달리 오 부사장은 느리고 완만한 스타일이다. 지난 4년간 수많은 제안을 받았지만 3개 점포만 열었다. 유행처럼 번졌다가 사라지기보다는 오래오래 사랑받는 식당이 그가 원하는 그림이다.
`창조`라는 것도 반드시 새로운 것에서 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전통을 지키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찾아나가면 된다”는 설명이다.
오 사장은 “도쿄 사이카보의 목표는 50년간 운영하는 것”이라며 “유행에 흔들리지 않고 단골손님의 자식들까지 꾸준히 찾는 곳을 만들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